<방학탐구생활>, 김선정, 문학동네
 
오지게 놀 줄 아는 녀석, 백석! 너 그렇게 놀다 크게 되겠다.
 
2013.7.19. 우경숙
 자연 속에서 뭐하고 놀지?
 음하하!! 고대하던 여름방학이다. 나는 어린시절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정쩡한 읍내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고 자연과 친해질 경험은 드물었다. 내 초등시절 여름방학은 매번 성당 산간학교 밖에 별다른 기억이 없다.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내겐 자연 속에서 한데 먹고 자는 산간학교는 단체생활은 늘 어색하다. 모래밭 곳곳에 친 텐트 행렬, 이른 아침 송창식의 '사랑이야'로 기상음악을 대신했던 수녀님, 일욜에는 뜸하다가 산간학교 때만 놀러오던 낯선 성당오빠들, 청년회 언니 오빠들이 와서 진행을 도와주던 것, 후포 바닷가의 공소에서 너무나 어두워서 무서웠던 밤도 기억난다. 나는 이틀째이면 으례 체하고 배가 아프고 갑갑해서 집 생각이 간절했다. 다들 비치볼도 하고 바다에도 뛰어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자연 속에서 난 어떻게 놀 줄 몰랐던 것 같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텐트 안에 벌레 들어올까봐 무섭고 정체 모를 부시럭 소리도 거슬렸다. 그때 만약 단체여행이 아니고 혼자 훌쩍 떠났더라면 달랐을까.
그래서인지 자연 속에서 놀 줄 알고 자신만만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언젠가 책모임에서 누군가 라배도(나배도)라는 남쪽바다 아름다운 섬에 갔다온 이야길 들려주었다. (라배도: 전라남도 진도군의 남서부 해역에 위치한 섬. 조도면 나배도리에 속하는 나배도 羅拜島) 그걸 듣곤 곧장 다른 분이 가족과 함께 라배도로 놀러갔다. 바닷가에선 낚시질도 하고 그 섬 이장님도 만나고 했다고. 나라면 전기 없는 곳에서 뭐하고 놀까 막막하다. 그러고보면 난 모험 결핍인가 보다.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고 자연과 친해질 기회는 드물고, 방학동안에도 정해진 스케줄 대로만 움직이는 요즘 초등학생들도 장차 나같은 소심녀와 다르지 않을 거 같다. 어쩌지?
 오지게 놀 줄 아는 녀석
 오지게 놀 줄 아는 녀석이 왔다. 삐삐롱스타킹 이래 이런 녀석은 처음인 듯하다. 반갑고 또 반갑다. 내가 갖지 못한 건 다 갖고 있는 부러운 녀석. 살펴보면 가진 건 넉살과 배짱밖에 없는 열세살 백석이다. 석이는 선 밖을 넘겨다보는 분방함에다 기지를 갖춘 천상 자유인이다. 더군다나 아이들 마음 안에 있는 모험의 씨앗에 불 붙이는 호쾌함이 매력만점이다. 허풍을 잘 떠는데 이것도 참 재간은 재간이다. 그것도 사고가 억눌려있지 않고 자유로워서 그러지 싶다.
삐삐는 어른들이 착한 아이라면 요기까지라고 금 그어놓은 그 금 바깥에서만 노는 아이 같았다. 그렇지만 엄청난 양의 금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지만 우리 곁에 흔히 볼 수 없는 아이, 상상 속의 아이로 비춰진다.  그런가하면 삼백만두 집 아들 백석이는 하는 말마다 호언장담이다. 맹랑하고 철없으나 알고보면 대인배 중에 대인배이다. 학원을 고박꼬박 잘 다니는 착실한 백석이는 방학 안에서 틈을 내보려 아버지를 설득하고 기어이 바라던 모험을 떠난다는 점에서 현실 속에서 있음직한 아이로 다가온다.
전설의 섬 칠금도
 주인공 백석도 그렇지만 만두가게 알바 하는 한수형과 한수형 할머니도 매력만점 인물이다. 한수형 할머니는 칠금도에서 혼자 살고 계시고 어린 나이에 부모 잃은 한수는 섬에서 뭍으로 학교 다니러 나왔다가 지금 열여섯 나이에 서울 삼백만두집에서 알바를 한다. 한수나 한수할머니는 청승이 없고 되려 자화자찬이 취미이며 열심히 사는 자기자신을 몹시도 사랑한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니 어찌 매력이 없을까. 역시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눈에 보이고 사랑할 수 있다. 칠금도에서 입담 좋고 손맛 좋고 속정까지 깊은 한수형 할머니 하나만 보고 백석과 백호 형제는 섬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정한다.
그리하여 만두 가게 아들 백석과 백호의 칠금도 좌충우돌 모험기는 출발~~! 동생 호가 깐깐하고 야무져서 여간 의지가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신비한 섬 칠금도에 전설이 없을쏘냐. 그옛날 용굴에서 살던 구렁이가 사람들 손에 마누라를 그만 잃었단다. 그러니 "어디서 우리 마누라 왜 죽였냐? 하고 서방구랭이가 나올까 모르니 나가놀 때는 조심해야써." 하며 한수형 할머니가 전설을 들려준다. 그런다고 작정하고 모험 온 백석 일행이 잠자코만 있을 턱이 없다. 조용하던 섬 곳곳에 제 발자국을 남기고 별별 추억을 다 만든다. 오지게 놀 줄 아는 녀석, 백석! 너 그렇게 놀다 크게 되겠다.
 가당치 않은
 모험은 무슨 모험? 가당치 않아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학부모라면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아이보다는 어른이 미리 하는 걱정과 간섭이 아이들의 상상력까지 가두는 때가 많으니. 혼자 하는 모험, 동생이랑 둘이 하는 모험, 친구랑 하는 모험, 시시한 모험~ 다 제쳐두고서라도 아이들에게 놀이와 휴식을 돈으로 사주는 것 말고 스스로 고르고 짜볼 기회를 주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 궁량껏 놀아보라고.
자! 그럼 준비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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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 휴

부제: '이사돌아 수녀'와 '흔들리며 피는 딸들'의 25시 사랑일기.

김인숙 글라라 수녀님 카페:  http://cafe.daum.net/clara212

 

   가출하는 소녀, 가출하는 수녀님

                                                                                                우경숙 http://phillia0424.blog.me/

 

 2011년 우리 나라, 삶의 질은 높아졌다고 하는데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은 정작 늘고 있다. 엊그제 별공고 아이들이 쓴 시집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를 읽었다. 마음이 아리다. 한 치 앞 전망을 내다 볼 수 없는 사회를 살아가야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감내해야 할 생활의 무게가 둔중하게 다가왔다. 그 아이들의 시를 읽으니 나는 <울기엔 애매한> 마지막 장면 원빈 녀석이 보인 울음도 터져나오지 않는 좌절의 표정을 떠오르기도 한다. 청춘의 자유를 유예한 세대. 그러기에 때론 주저 앉아버리고 싶을 만큼 자신을 놓아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나 사회의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깊은 상처를 받아안아 치유할 공간도 필요하다. 그런 도움을 주는 곳으로 학교에서 징계 받아 머물게 되는 위탁 대안교실이 있다. <사춘기 십대들과 소통하는 법>이 책은  '끔찍하게 말 안 듣는 십대와 소통하는 법' 란 부제를 달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인성교육을 위해 대안교실로 보내진 중고등학생들을 만난 풀꽃샘의 일지이다. 지난 2000년부터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서울시교육청 위탁 대안교실이다. 수업 내용은 주로 자아 존중감 향상, 교우관계 개선, 학습 향상, 의사소통과 대화 기법, 가치관 형성, 진로 탐색과 미래의식 함양으로 되어 있다. 해가 갈수록 대안교실에 위탁되는 중고등학생의 수가 늘어나 지금은 1천여 명이 넘는다.

 

 그런데 가정의 보호그물망이 요즘처럼 약한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일탈은 더 빈번해진다. 학교의 징계를 받는 정도를 넘어서 청소년들이 소년범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경우이기도 하다. 년범으로 법정에서 6호처분을 받은 소녀들도 있다. 열다섯 남짓의 이 소녀들은 6개월간 마자렐로 센터에서 보호받는다. 화장을 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인터넷 채팅으로 어른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고…. 너무 일찍 어른들의 세계에 눈 떠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웃는 얼굴엔 또래보다 아픈 성장통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글라라 수녀는 이 아이들을 ‘희망의 꽃’이라 부른다. 좋은 어른이 곁에 있으면 반드시 변화의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님들이 둥지 틀고 머무시는 마자렐로 센터. 이곳은 그 소녀들의 상처와 아픔을 품어주고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둥지 역할을 한다. 상처받은 소녀들이 한 집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치유하는 공동체, 이곳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해있다. 이곳으로 한 달 반 동안 수련수녀가 실습을 나오자 원장수녀가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수녀님,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 아이들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게 세 가지 있어요.

너 엄마 계시니? 학교는 어디야? 몇 학년이지? 하는 질문들인데 우리 아이들은 대답할 수가 없어요." (236쪽)

 

  마자렐로 센터는 그 아이들이 책임 있는 시민으로, 내면을 치유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시설이다. 아침 저녁 둘러 앉아 먹는 집밥, 늦은 밤 이불을 덮어주는 수녀님의 손길에서 모정보다 강한 포용의 온기를 느낀다. 핸드폰을 이용할 수 없는 것, 저녁 5시까지 반드시 센터로 귀가하는 약속을 지키는 것, 센터 내에서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나누어 맡아 지키는 것 등을 지켜야한다. 소녀들은 조금씩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간다. 그래서 의무적인 6개월이 지나고서도 이 시설에 6개월 더 수용(?)되기를 바래서 더 남는 경우도 있다. 마치 금연 약속을 지인과 가족들 앞에서 선언하고 자신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는 경우처럼. 자기통제력은 타인의 관리와 관심이 동기가 되어 길러질 수 있다. 습관과 행동이 변화하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설에 온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더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센터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센터에 수용된 또래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긴장을 놓지 않고 고검 (고입 검정고시), 대검 (대입 검정고시)시험을 치루고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차가운 법원 바닥에 수갑을 차고 앉아있다가 센터도 인도되어 자신의 삶을 설계해나가던 소녀가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게 된 사연도 참 감탄스럽다.

 

#소담이

소담: 원장수녀님, 제가 결혼해서 아이들 낳으면 마자렐로 센터에 보낼래요.

원장: 왜?

소담: 여기가 제일 교육을 잘 시키는 것 같아요.

(소담아, 제에발. 너 하나로 충분하다.)

 

#민이

수녀님: 민이야, 너의 앞길은 결정되었다.

        너는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복지사가 되어라. 너만큼 도통한 전문가가 어디 있겠니.

민이: 정말 그러네요.

 

  센터에서 수녀님들과 소녀들의 생활이 어찌 기숙사의 낭만만 있겠는가? 때로 아이들은 내뱉지 못한 절망과 분노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이나 수녀님에게도 불끈불끈 표출하리라. 가슴 뭉클한 포용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수녀님들과 소녀들의 일화 하나하나가 모두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책을 덮고서도 여전히 남는 여운은 바로 '글라라 수녀님의 가출사건'이었다. (203쪽)

 '처 많은 아이들과의 생활은 그 상처의 고름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사건으로 터질 지 모르는 하루하루다. 너무나 잊고 싶어서 망각의 늪 속에 숨겨놓은 아이들의 상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함께 생활하는 누군가에게 분노로, 막말로, 거친 몸짓과 행동으로 폭발한다. 아이들은 알까? 자신이 받은 상처의 파편들이 또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206쪽)

한 아이의 심한 욕설과 가시 돋친 반응에 글라라 수녀님도 더는 수용할 수 없는 정신적 기절상태가 되었다. 나중에 수녀님에게 쌍욕을 하고 오히려 수녀님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위악을 떨던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아프게 각성했다 한다.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집도 없이 봉고차에서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다가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가 입은 상처

는 치유되지 못하고 옹이가 깊어지다가 그리되었다 한다. 이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길 때 가족 법정을 열어 진실을 듣고 서로에 대한 신뢰, 서로가 지킬 약속을 확인한다.

 

 복지의 토대가 더 든든했더라면, 공교육의 토대가 든든했더라면 ...... 이런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도, 6호 처분을 받고 사회에서 내쳐지는 아이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님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이 책의 주인공들인 소녀들에게 지금까지 잘 견디고 꿋꿋하게 살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라고.

또, "어디서든 여기 살 때처럼만 하면 돼."라고 격려해주신다. 몸에 밴 무질서한 습관 때문에 또 쉽게 무너지려 할 때 이곳 생활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라고.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추천의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마자렐로 센터 아이들을 비롯해 장애아, 다문화 가정 아이들까지 모두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진정한 공교육의 토대를 마련할 때까지 경쟁에서 내쳐진 우리 아이들 좀 잘 부탁드립니다. 더 많이 수고해주십시오."

 

<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후원하는 일에 더 큰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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