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감풍운 - 감시 학교
유영준 지음 / 잇스토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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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행하는 교육과정은 힘든 것도 있지만 얼마든지 이를 악물고 감내할 수 있답니다. 근데 뭐냐고요? 우리는 친구들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교도소처럼 교복에 세 자리 숫자가 가슴에 적혀져 있고 그 숫자로 호칭되어집니다. - p.121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녹색 노란색 분홍색 명찰들과 숫자들이 진흙탕 바닥에 어지럽게 섞여버리며 전교생 모두 잔잔한 흥분에 휩싸인다.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난 듯한 그들의 얼굴, 슬픔과 감격이 뒤범벅된 얼굴로 섞이는그들. 강북 강남 여학생 할 것 없이 그들은 하나로 묶이고 있었다.
- p.158

“인생에서 매번 성공할 수 없지. 마찬가지로 실패도 영원한 것은 아냐.”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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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로 학생을 부르는 학교, 시범제일고.
새 전학생 준희를 중심으로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문제아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이 아이들 역시 한 번의 실수로 인생 전체가 규정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감옥처럼 느껴지는 학교에서 6개월의 유예기간은 처벌이 아닌 두번째 기회에 가깝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잘못을 고치고, 규정에 맞게 행동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과정이다.

최근 한 영화배우의 사건으로 소년범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마음에 남아서인지, 이야기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학교의 폐쇄성보다 아이들이 변화할 수 있는가, 사람을 다시 믿어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문제아의 낙인보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변화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를 조용히 묻는 이야기였다.

최근 대학 입시에서도 생활기록부의 한 문장 때문에 불합격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며, 작품 속 무게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작은 흔적 하나가 미래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겁게 작용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폭력이나 괴롭힘에 대한 피해자의 입장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실수’였던 일이 어떤 이에게는 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일 수 있다는 것, 그 상처도 함께 보살펴져야 비로소 진짜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기회’는 가해자만의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의 흔적과 상처의 무게를 함께 생각해게 한 소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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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_story.kr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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