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욘 - 친구 감시자
딜게 귀네이 지음, 이난아 옮김 / 안녕로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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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7 / 경찰의 감시를 받으면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당신의 컴퓨터, 휴대 전화, 심지어 집까지도. 저희가 감사히겠습니다. 최상의 안전을 위한 24시간 보안 감시 시스템!

영상은 공익 광고처럼 시작됐지만, 곧 자극적인 이미지가 겹쳐지며 불안감을 키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피욘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가 등장했다. 그것은 곧 이 시스템의 부당함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메시지였다.

감시를 원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자녀도감시하지 마세요. 아이의 소중한 정보를 다른 이에게 팔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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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구역에 사는 야세민. 우연히 알게 된 어플 ‘피욘’. 부모가 자녀의 사생활을 은밀하게 들여다보는 어플이지만 그 속에는 아이들의 사생활과 개인정보가 무분별 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그 비밀을 파헤치고 피욘의 실체를 세상의 알리고 자신이 친구의 사생활을 그녀의 엄마에게 돈을 받고 알렸던 사실도 함께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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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빛이 따뜻함을 상징하던 건 어디까지나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피욘의 오렌지 구역에서 주황색은 더 이상 해가 지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도망칠 수 없는 삶의 계급과 낙인을 의미하는 색으로 표현된다. 경찰도, 병원도, 보호도 닿지 않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주황 글씨처럼 ‘보이지 않는 표시’를 달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오렌지빛의 정렬와 따스함보다 유난히 탁하고 무거운 색으로 다가왔다. 희망을 감추고 절망만을 비추는, 따뜻함을 가장한 차가운 색. 밝게 빛나는 듯하지만 실은 사회가 외면한 자들의 삶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잔혹한 조명 같은 색이었다.

오렌지라는 하나의 색이 이렇게까지 운명, 빈곤, 소외를 압축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색 하나가 인간의 삶을 규정해버리는 『주홍글씨』의 낙인처럼 뼈아픈 진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피욘’이 보여주는 진실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침해되는 건 결국 개인의 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자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기능은 겉으로는 안전을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청소년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구가 된다. 허락 없는 접근, 일방적인 관찰, 선택권의 부재는 안전이 아니라 사생활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침해다.

단순히 미래의 기술을 상상하는 소설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처럼 느껴졌다.실제 부모들이 자녀의 안전을 위해 설치하는 각종 자녀 보호 앱, 위치 추적, 사용 기록 모니터링 기능은 겉보기에 보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보호가 어느 순간 감시로 넘어가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생활과 선택권을 상실한 채 관리되는 존재가 된다.

여기에 최근 쿠팡 해킹 사건이 겹쳐지며 메시지는 더욱 무거웠다. 거대한 시스템에서도 개인정보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고, 한 번 유출된 정보는 개인의 삶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부모가 접근할 수 있는 아이의 사적인 정보는 얼마나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을까.

보호라는 이름 아래 사생활과 인권이 얼마나 손쉽게 침해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편리함과 안심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되묻는 이야기였다.

부모의 사랑이 때로는 폭력이 되고,
기술의 발전이 때로는 감옥이 되는 순간들을 보여준 소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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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robin_books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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