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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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북을 읽는 동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황옥호, 주해환, 오광심이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균형이었다. 해환이 실제 사건을 토대로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옥호는 유명 형사라가 되었지만 정작 그는 이 때문에 제대로 뛰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버렸다. 반면 그가 소개한 광심은 감정의 결이 남들과 다른 인물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 깊은 호기심을 자아냈다.

특히 광심의 어릴적 상담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가 딸이 혹시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는 위험한 존재로 판단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순간, 상담사는 단정적으로 말한다.

“감정의 온도가 조금 낮은 아이예요.”

그 한마디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송두리째 바꾼다. 규칙만 강요해서는 안 되고, 행동의 이유를 차근차근 알려주며, 무엇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은 광심이라는 캐릭터를 전혀 다른 인물로 소개하는 듯 보였다.

이후 정치권 입문을 앞둔 유명 인사 고보경의 양딸 고영혜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급격히 긴장감이 높아진다. 조용히 처리하길 원하는 고보경과, 유명세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옥호, 그리고 결국 사건을 떠안게 되는 광심. 광심이 학교로 향해 단서들을 대조하는 과정에서 오래전 전형수 교수와 얽힌 사건들이 다시 떠오르고, 고영혜가 남긴 이상한 흔적과 어머니에게 도착한 꺼림칙한 우편물이 맞물리며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진다.

이 작품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인물들이 얼핏 평범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경찰, 작가, 정치인, 그리고 감정이 낮은 아이.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각기 다른 비밀과 왜곡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 누가 어떤 진실을 감추고 있는지 끝내 단정하기 어려웠다. 겉면은 잔잔하고 평범 그자체이지만 속은 비열하고 불길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사람들의 초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짧은 분량임에도 인물 간의 흔들리는 관계와 서늘한 기류가 또렷하게 살아 있어, 다음 장면에서 누가 어떤 얼굴을 드러낼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샘플북이었다.

선의 가면을 쓴 채 일상을 살아가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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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gom.book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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