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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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 네팔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인물이 유기적으로 녹아든 작품이었다. 거짓 통역을 통해 한 사람에게 살인죄가 뒤집어씌워지는 이야기의 표면 아래에는 방사능 피폭이라는 묵직한 사회적 문제가 깔려 있었다.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진실과 책임, 그리고 인간의 양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었다.

작품 속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쿠마리’라는 네팔의 문화였다. 네팔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살아있는 여신을 신으로 모시는 독특한 문화. ‘제3의 눈’을 지닌 여신이라 불리며, 어린 소녀가 신의 현신으로 선택된다는 점은 낯설고도 신비로웠다. 쿠마리는 2세에서 5세 사이의 소녀 중에서 흠 없는 피부, 검은 눈동자, 가지런한 치아 등 무려 3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선발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두운 방 안에서 제물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 ‘흑방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니, 그 신성함의 이면에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가 느껴졌다. 하지만 초경이 시작되면 쿠마리의 자격이 사라지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 신으로 추앙받던 소녀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특히 안타까움을 남겼다.

소설은 이러한 네팔의 신비로운 문화와 한국 사회의 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작품이었다. 주인공 도화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위험 속에서도 타인을 돕는 강인함과 정의로움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했다.

그리고 보라색나비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쿠마리의 ‘제3의 눈’이라는 영적인 상징성과도 닮아 있었다.

현실과 초월, 인간과 신의 경계.. 낯선 문화의 이야기이면서도 결국 국경을 초월해 결국 진실에 다가가는 탐구로 이어지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소설이었다.

낯선 문화 속에서 인간의 양심과 진실을 향한 여정을 그린,
묵직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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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hole_book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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