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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박정호 지음 / 나무수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항상 책겉장을 넘기면 저자의 약력을 본다.
글을 쓴 이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대학을 나오고...그게 내게 중요해서는 절대 아니다.
가끔 요약된 몇줄의 글을 통해서 지은이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엿볼수 있을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작가는 티피 프로그램에 글을 쓰던 사람이었고,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자주 해야하는 조건이 있는 업을 택했다는 사람이다.
여행이라는건 사실 중독성이 강하다. 한 번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는
재미를 느끼면 마치 골초인 사람이 금연하기가 힘들고 알콜중독자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수 없듯이, 여행의 맛을 알면 "떠나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된다.
결혼을 해서까지도 여행이 취미였던 남편과 나는 세상 구석 구석을 참 많이도 보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남미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은 이집트를
제외하고는 밟아보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여행하기 편한 서방국가들만 거쳐다녔던 셈이다.
책장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참 좋다. 필체가 고운 사람이 휘갈겨 쓴듯한 제목도 그렇고
심플하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표지 디자인이 독자에게 얼른 그 표지를 넘기고
겉에서 보이는 심플함이 과연 책안의 내용까지 반영하는지 직접 확인하라 손짓한다.
옛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터키에서 작가의 여행은 시작된다.
한국이 일본 지배를 몇십년 받으며 가졌던 감정. 내 남편의 나라인 그리스의 국민들은 500년을
터키지배하에 살았었다. 그리스 정교회의 성지와 같은 아이야 소피아 성당도 터키에 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터키인은 싫어하면서도 울며겨자먹기로 터키에는 한 번씩 가 보길 소원한다.
그렇게 터키에서 여행을 시작한 작가는 터키를 거쳐 시리아, 요르단, 산티아고, 스페인, 포르투갈,
세네갈, 타클라마칸 사막에 이어 돌아와서까지의 얘기를 펼쳐놓는다.
바삭 바삭 말라버린 가을 낙엽같은 목소리와 마치 내가 그 속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사진들 (직접 찍었다해서 깜짝 놀랐다)로 엮어낸 이 책은 감성적인 여행엣세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비웃듯이 묘하게도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저 듣고 보기에 달디단 스타일의 여행기는 아니다. 작가의 생각과 철학, 삶에 대한 자세가
보이는 책이랄까? 암튼, 오랫만에 내 자신의 생각의 깊이를 재보도록 해주는 여행기를 만난
반가움이 좋았고, 비록 어린 아이둘을 곁에 둔, 생활에 찌들어가고 있는 엄마가 당장 짐을 꾸려
가 볼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어느 한 순간에 내 자신도 그 곳의 땅을 밟으면 이 책을 읽었던
2010년의 여름을 회상하게 해주겠지...라는 희망과 함께 큰 대리만족을 주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