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평점 :
요 근래에 친구나 지인들과 자주 그런 얘기를 한다...다음 생애에 나는 이렇게, 저렇게 살고 싶어...라고.
지금 내가 사는 생에 대한 불만족과 더불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하는 얘기겠지만, 다음 생애라는 것이 진짜 있는지, 죽음 뒤에 어떤 것을 맞닥뜨리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이야기는 양페이라는 주인공이 마치 연회장 혹은 모텔 이름같은, 화장터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는 주인공이 화장터에 도착한 후에도 그가 화장을 당하는...그러니까,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작 부분의 몇페이지가 살짝 지루한 감이 있고 전개가 느리다고 느껴졌었는데, 이 부분에서부터 갑자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책을 읽게 되고, 금새 몰입하게 된다.
그가 화장터에 도착해서부터 7일동안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돌며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이다.
읽은지 꽤 오래된 미치 앨봄의 소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이 전하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이 작품을 읽는 내내 했던
것도 같다.
양페이는 기차의 화장실을 이용하려던
어머니로부터 이 세상에 떨궈진 후, 철로길에서 그를 발견한 양아버지 양진바오의 품에서 자란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남자가 어찌 애를
키우려나 싶지만, 그의 양아버지는 자신의 삶조차 내려놓고 그를 극진하게 키워낸다.
넉
넉치 않아도 사람의 온정과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자랄 수 있었던 양페이가 결혼에 실패했을 때도 그 옆을 지키는 것은
바로, 그의 양아버지이다. 그러던, 양페이의 양부는 아들과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급히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페이도 사고사를 당한 것이다.
화
장터 대기 번호가 3번이었던 그는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64번이라는 새 대기표를 받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죽은 자들) 속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우습게도, 죽어서도 평등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나보다. 시장님의 화장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귀빈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수입용 화장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국내산 화장기를 이요해 화장이 된단다. 작가는 이런
모습들을 통해서 중국내 빈부격차와 사회구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는 무덤이 없어 안식할 기회조차 없다고 느끼고, 화장터를 벗어나 자신이 살아 있을 때의 인연들과의 만남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는다. 위화는 양페이를 앞세우고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글을 읽는 내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젊은
나이에 철로에 버려진(버려졌다고 생각한) 아기를 결혼도 않고 극진히 키웠던 양아버지, 한결같은 모습에 반해 양페이와 결혼했으나 그
모습에 싫증을 내고 이혼을 해버린 전부인, 자신의 젖을 물려가며 양아버지를 도와 양페이를 키웠던 옆집 아주머니, 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만났던 젊은 셋방 커플등등....그리고, 양아버지.
예
전에 친정어머니는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내 곁에 인연으로 다가온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렇지 못해서 내 주위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항상 좋은 마음을 가지라고. 불교신자이신 어머니께서는
부부의 인연과 부모 자식간의 인연은 몇억겁의 세월의 인연이 쌓여 만나지는 것이니, 가장 소중히 대해야할 인연이라고도
하셨었는데...이 책을 읽는 동안 양페이의 양부의 부성애에 감동하기도 했지만, 나는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요 근래 내게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일련의 사건(!)들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작
가가 어떤 메세지를 전하려고 했는지, 굳이 어렵게 생각지 않으련다. 나는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만큼만 느끼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라고 믿기에.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얻은 인연에 대한 깨달음과 어머니께서 전해주셨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고 실행해 보려는
생각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