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eobby > 음악과 과학이 하나로

최근의 학문적분위기는 하나의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다양한 학문들이 통합되는 것입니다. 최근 가장 유행하는 인지과학도 신경과학을 비롯한 첨단 이공계과학과 철학과 심리학등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이 혼합되어 이루어지죠. 이러한 유행이 음악이라는 예술적 분야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역작이 바로 이 책입니다.

소리의 분석과 귀의 진화에서 시작해 경영학도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뇌의 구조및 기능에 대한 신경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음·멜로디·하모니·리듬·작곡·연주·감상·이해 등 음악의 다양한 분야를 맛갈나게 이야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한 답인 우리가 음악에서 어떻게 활홀경을 느끼는지를 제시합니다. 팁으로 이러한 다양한 분야를 풀어내는 저자의 현란한 지식과 이러한 인물들을 종종 풀어내는 프랑스라는 나라와 학문적 토론을 즐기며 친구처럼 지내고 결혼 20주년 기념을 이 책의 번역으로 하겠다는 발상을 지닌 부부에 대한 놀라움과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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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에게 아들은 어떤 의미인가? 국내에서도 '가시고기'나 '아버지' 같은 문학작품으로 또 영화로 대중에게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했고 과연 이 시대의 아버지 상은 도대체 어떤 것이고 잃어버린 가장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 지 사회적 이슈로 회자된 바 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오곤 한다. 왜냐 하면, 엄한 아버지의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이미지와 친구처럼 가깝고 친근한 이미지가 이중적으로 투영되어 복합적인 대상으로 지각되는 것이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 끝없는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평생토록 친구처럼 연인처럼 일관되게 편지로 부정(父情)을 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은 자기 자녀에게는 좀처럼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특히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관심이라는 이유로 지나칠 정도로 간섭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분별 없는 태도를 가지기 쉽다. 교육학자들은 한사코 부모가 변해야 하고 부모가 일관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상의 허다한 부모들이 바로 그 점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해서 가장의 권위 혹은 지도력이 무너져 내리고 가정 교육이 실패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 한 아버지가 계시다. 그 자신이 다소 특별한 사람으로 중국에서 개화 초기에 유럽으로 유학을 다녀 온 지식인이었으며 일찍이 자식의 음악적 재능을 간파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녀 교육에 헌신한 사람이다. 번역가이자 사상가로서 자신의 소신을 평생 지킨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자식 앞에 한없이 부드럽고 관용하는 모습이 한국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비록 사회주의에 사상적 배경을 두고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고집 센 모습도 보여주지만 이역만리에 유학보낸 아들을 위해 사흘이 멀다하고 마치 밥상머리에서 아들을 다독이고 훈계하는 모습처럼 친근하게 접근하는 모습은 가히 존경스럽다.

반대로 아들의 모습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100여 통의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지는 아들의 태도는 아버지에 비하면 매우 소극적으로 비쳐진다. 아버지는 아들이 편지를 자주 보내주지 않는 것에 때로는 서운해하기도 하고 가끔 노골적으로 야단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아들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 함께 음악을 듣고 음악을 연구하며 세심한 면까지 토론한다. 아들이 곁에 있는 것처럼 연습할 때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자세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쪽같았던 아버지의 모습도 늙어가면서 차차 약해지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아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조국이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상적 시비에 휘말려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을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면서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였을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수십년이 흐른 뒤에 아들 부총은 조국으로 돌아와 음악대학의 강단에 선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조국애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자식에게 부모는 거울과 같다. 부모는 자식에게서 마치 물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듯한 동질감에 때론 기뻐하고 당혹해 하며 자식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존경했거나 비난했던 부모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고 당황하며 뉘우친다. 부뢰가 자식에게 보낸 수백통의 편지 속에 담겨진 아버지의 사랑은 오늘 날에도 변함 없이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자식들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옛날처럼 손으로 편지지에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던져 넣는 낭만과 기다림의 미학은 발견하기 어렵다 해도 디지털 시대에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유효하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고 어머니를 통해 양육되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자녀에게 푯대가 된다. 그러나 흔들리는 푯대는 더 이상 푯대가 아니다.

이제서야 소개되는 부뢰의 편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푯대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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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이 책은 편지로 엮어져 있다. 세계적 피아니스트의 아버지가 그 피아니스트에게 보낸 편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편지들 속에는 세상 여느 부모들과 다를 바 없이 자식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섬세한 배려, 따뜻한 충고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피아니스트 푸충의 아버지 푸레이가 그의 부인과 함께 문화혁명 때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동반자살을 한 것이다. 아들의 상심이 컸으리라... 새삼 부모의 사랑이나 자식에 대한 애정이 그리운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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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서로에게 믿음을 가지며 살까요? 얼마 전 개인적으로 절 믿어주지 못하는 친구로 인해 적지않은 실망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라고 하는 사이에서도 참 찾기 힘들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보다 가까운 가족의 경우는 믿는다는 가정 하에 많은 상처와 실망을 주고받기도 하지요. 그만큼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고 아니 그래 줄 수 있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여기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부자가 있습니다. 중국의 저명한 번역가이자 문화가인 부뢰와 그의 아들이자 중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부총간의 서신. 처음엔 중국에 대한 호기심에, 그들의 베스트 셀러이었다는 이야기에 손을 댔습니다. 어찌 보면 흔한 부모가 가지는 잔소리라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잔소리는 상대방을 모른 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잔소리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참소리’입니다.

부모로써 또 친구로써 같은 예술인으로써 이야기를 나누고 진심 된 충고를 하고 기우로써의 걱정이 아닌 쓸모 있는 걱정을 합니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도 이런 아버지가 있었으면, 아니 내가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드는군요. 아들을 친구이상으로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부자관계. 어느 먼 나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에게서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믿음.

예술이라는 이상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세는 이 둘에게 있어서 공통분모로써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소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둘이 갖는 그것에 대한 열정과 열심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 큰 교훈으로 다가옵니다.

… 이후 부뢰는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습니다. 부총역시 어떤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는 것이겠지요. 서로의 믿음과 감정만을 앞세우는 사랑이 아닌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 멋진 사랑을 당신께도 보여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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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호랑녀 > 중국인들의 가슴을 적신 한 아버지의 목소리

어느 책에서인가, 쇼팽의 녹턴을 들을 때는 후쫑의 것을 들으라고 권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후쫑은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폴란드로 유학을 가 피아노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본국에서 우익으로 몰리면서 중국으로 돌아가면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영국으로 망명을 했고, 그의 부모는 집안에서 장개석의 사진이 한 장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홍위병들에게 몰리자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결을 했다고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조국, 다시는 볼 수 없는 부모 형제... 이런 상황들이 쇼팽과 그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듯, 후쫑의 쇼팽 연주는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그가 연주하는 녹턴을 듣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졌지만 내 실력으로는 찾기가 힘들다. 그냥 그렇게 잊고 있었다.

어느 날, 광주에 사는 큰언니가 메일로 책을 한 권 권했다.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다.
원제는 傅雷家書. 부뢰 집안의 편지쯤으로 해석이 될라나 모르겠다. 미술사를 전공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부뢰(傅雷) 부부가 외국에 유학 가 있는 아들, 피아니스트 부총(傅聰)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부뢰는 장남 부총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발견되자마자 즉시 초등학교를 중퇴시킨 후, 영어 수학은 가정교사에게, 제자백가, 좌전, 사기 등은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에 일고여덟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게 했다고 한다.
피아노유학을 떠난 후에는 편지를 통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었다. 그 편지들의 모음이 바로 이 책이다.

책 속의 아버지는 시종일관 반듯하다.

나는 내 일생 중 어느 시기에도, 심지어 연애를 가장 열렬히 했을 때에도 학문을 잊지 않았다. 학문, 예술이 첫째고, 진리가 첫째며 애정은 둘째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나의 원칙이다.

이런 식의 학문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들,

너에게는 원래 두 가지 버릇이 있다. 하나는 남의 집에 갔을 때 방에 들어가 외투는 벗어도 목도리는 그냥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늘 손을 윗옷 주머니나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다 서양 예절에는 맞지 않는다...(중략)... 선생님이나 윗사람에게 이야기할 땐 "손을 바로 드리우고 몸을 꼿꼿이 세워야 한다". 이런 예절이 습관이 되면 평생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자세에 관한 이야기들,

편지 봉투에 글씨를 너무 크게 쓰지 말아라. 표면 전체를 다 차지했더구나. 두 통의 편지 중 한 통은 길 이름 일부를 우표가 가렸고 한 통은 내 이름 한쪽을 덮어버렸다. 편지 봉투에 우표 붙일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쓴 편지 봉투를 잘 보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등의 사소한(이렇게 말하면 부뢰가 벼락을 내리겠지만) 것들까지 시종일관 부뢰는, 우리 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선비, 서양 식의 말로 표현하자면 젠틀맨이다.

피아노 연습을 어떻게 하라는 것부터, 스승을 대할 때의 자세, 스승을 바꾸고 싶을 때의 방법, 러시아어나 영어 등 외국어를 배울 때의 공부방법 등 하나하나 옆에 놓고 삶의 교본으로 삼아야 할 말들이 엮여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부총이 되어 숨이 막힌다. 요즘 나의 관심은 육아와 교육이니, 당연히 아버지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아이를 반듯하게 키우려는 아버지의 부성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만, 난데없이 숨이 막힌다.

나도 이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대학 4학년 때, 아버지는 영국으로 1년 동안 공부를 하러 가셨고 엄마는 아버지를 따라가셨다. 함께 가서 나도 어학연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셨던 부모님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고, 나 역시 소심한 성격 탓에 부모님을 조르지 못했다.

막상 영국에 도착하시자 부모님은 내내 두고 온 막내가 걸리셨던 모양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하숙집에는 봉함우편이 한통씩 꼬박꼬박 배달되었다. 반듯하고 깨알같은 글씨로 쓰인 엄마의 편지였다.
처음에는 눈물을 삼키며 봉투를 뜯었다. 그런데 편지 내용은 늘 이런 것이었다.

사랑하는 막내에게!
이번 여행 중에 영국의 이곳 저곳에서 한국 학생들을 더러 만나게 되었다. 그때마다 네가 더욱 그리워지더구나. 방학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냈다고 생각되느냐?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인데 네 뜻만큼 효과도 컸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이제 마무리 잘 하고, 후학기에도 유종의 미를 구둘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밝은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아줌마랑 네 방 언니에게 안부 전하기 바란다. 엄마가.

**에게!
캠브리지에도 단풍이 곱고 낙엽도 쌓이는 것을 볼 수 있구나. 그러나 여름 내내 시들어 있던 잔디는 이제야 제철을 만난 듯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어서 영국의 특징을 볼 수 있는 좋은 예인 듯하다.
요즘 시험공부가 바쁜 모양이구나. 곁에서 누가 뭐라 하든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공부하기 바란다.
한 번 가버린 학창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곳 캠브리지 칼리지에서 이번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교수 발령을 받은 젊은이도 그동안 함께 공부하는 한국인들을 전혀 만나지 않고 외롭게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의 영광이라고 한다. 열심히 하기 바란다. 특히 건강에 조심해라. 안녕! 엄마가.

엽서라서 이 정도였지만, 봉함우편에 든 편지들은 최소한 이 다섯 배쯤의 길이. 칼같이 배달되는 월요일의 편지에는 늘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수해가 나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가슴 아파하는 것은 옳지만 흔들리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하셨고, 먼저 취직된 친구가 부럽다고 하면 또 부러워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염려하신다는 내용이었다.
내 편지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시고 그에 대한 답을 보내시는 것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답장을 하는 것이 겁이 나서 안 하면, 자식의 도리에 대해서 얘기하셨고, 아예 공부에 대해 안 쓰는 날에는 요즘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답장이 왔다. 숨이 막혔었다.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엄마의 편지들이 생각이 났다. 결혼하고 여덟 번이나 이사를 하느라 많이 없어져버렸다.
다시 꺼내 읽었더니 왜일까? 이제야 눈물이 난다. 이제야 가슴에 사무치고, 이제야 그때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을, 그때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때 내가 답답했던 것은 엄마의 편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갖지 못하고 있던 비전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늘 반듯하고, 늘 곧았던 엄마를 보고 자랐는데, 어쩌면 늘 말만 앞세우고 늘 신경질이나 내던 엄마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밑줄도 긋고, 다시 한 번 나의 몸가짐을 반듯하게 해 본다.
부뢰 부부는 중국의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의 비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반듯하다.

반듯하게 살고 싶다. 부뢰처럼, 엄마처럼...

아, 부총이 바로 후쫑이었다. 쇼팽의 곡을 어느 누구보다더 잘 친다는 그 후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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