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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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은  20세기 중남미 시단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페루 시인 세사르 바예호(1892~1938)의 시선집이다.
그의 시들은 1998년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라는 선집으로 소개됐으나  절판된 상태에서  고혜선 교수가 이번에 이전의 시선집에 수록된 시들을 다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시들을 추가해 122편을 수록하여 출간해 낸 것이라 한다.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함께 떠올랐다. 사실 나는 네루다에 대해서는 친근하게 듣고 또 몇 번 접해봤으나 세사르 바예호의 시는 처음 접해보았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시선집을 읽어보고서야 두 시인이 종종 비교가 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루다의 시와는 달리 바예호의 시들은 너무나 어두웠다. 시를 계속 읽다보면 시인이 너무나 측은 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고생한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신이 아픈 날에 태어난 존재로 부실하고 부족한 존재로 생각하는 바예호.
그런 그에게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살다 보면 겪는 고통. 너무도 힘든… 모르겠어./ 신의 증오가 빚은 듯한 고통. 그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괴로움이/ 썰물처럼 영혼에 고이는 듯… 모르겠어.// 얼마 안 되지만 고통은 고통이지. 굳은 얼굴에도/ 단단한 등에도 깊디깊은 골을 파고 마는…/ 어쩌면 그것은 길길이 날뛰는 야만족의 망아지,/ 아니면, 죽음의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검은 전령."


바예호는 4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40여 평생을 살면서 고통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학업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떠나 살았던 고아 아닌 고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죄수, 체포의 두려움 속에서 파리로 향한 도망자, 평생을 따라다닌 가난으로 고통받으며 병마와 싸운 환자였다고 한다.
그의 생애 과정을 보면 그가 생에 대해 비극적인 관점을 지니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있슴이 이해가 된다.

바예호는 언젠가 올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시들을 많이 쓰기도 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파리에서 죽겠다.
그날이 어느날인가는 이미 알고 있다.
파리에서 죽으리라. 피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오늘 같은 가늘날 목요일 거다.

오늘 같은 목요일 거다. 이 시를 쓰는
이 목요일 상박골이 아파오고 있는데
내가 걸어온 이 길에서 오늘만큼 내가
혼자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세사르 바예호는 죽었다. 바예호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모두들 바예호를 떄린다.
몽둥이로 얼마나 두드려대던지. 게다가

동아줄로 얼마나 세개 옭아매던지
목요일 상악골 뼈 고독 비 길
이 모두가 몽둥이 찜질의 증인이다."



죽음에 대한 바예호의 시각이 좀더 심화된 것은 자신의 피붙이들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11남매였던 바예호는  자신의 바로 위의 형 미겔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누나 마리아의 죽음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작품 곳곳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뭍어나 있어 안스럽기도 짠하기도 하다.

 

      "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 있어.
      형이 여기에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나.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ㆍㆍㆍ 중략)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걱정하실 수 있잖아."



바예호의 시들이 처음에는 어둡고 침울하고 비관적이기에 읽기에 조금은 힘겹게 느껴졌는데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의 글에서 어쩌면 외로움에 따스한 시선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하늘과 땅,/ 삶과 죽음에서/ 두 번이나 버림받은 / 내 형제"
- 네루다가 <바예호에게 바치는 송가>중

이 시인 바예호의 시들은 살면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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