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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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 라는 에필로그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은 스파이, 사라지는 사람들, 감시, 소설가 ,책, 혁명...

책의 표지에서부터 선명한 파란빛이 차갑기도, 냉담하기도, 또는 깨끗하기도 한 느낌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건 이 작품의 제목이 무얼 의미하는걸까 하는 것이었다.

작품은 등장인물들 각자의 파트를 번갈아 각각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렇게 단편적인 조각들을 한 데 모아 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작가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꽤 남성적이며 건조함이 있고 서늘한 문체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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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실종된 일란성 쌍둥이 언니의 비밀을 추적하는 여성 D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신의 존재는 이 세상 어디에도 공적 기록에 있지 않은 ,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D. 그리고 이제 사라진 언니의 흔적을 더듬으며 언니를 대신해 언니로 살아간다.

"이 세상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기억과 양심, 진실 그리고 그것을 가진 사람도." -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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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부터 15년의 기억을 잃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 누군가가 알려주는 그대로 스파이의 삶을 살며 조정당하는 남자 X. 그리고 그의 유일한 지인으로 되어 있는 여자, 스파이 Y. 그리고 둘은 연인관계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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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X,Y 의 상관인 B. 그도 예전엔 일선에 있는 스파이였으나 이제는 지휘를 하는 관리자 자리에 있고, 자신의 자리와 일에 대한 사색과 많은 생각들에 혼란스럽다.
그리고 Y가 감시 업무를 맞게 된 대상자인 소설가 Z.
Y가 감시를 하고 그 일지를 작성해 올리지만 Z의 일상은 별다를것 없이 무료하고 단조롭기에 자신이 왜 이런 감시 업무를 맡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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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설은 '스파이 소설' 의 면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은 어떤 사건의 해결이 아닌 등장인물 스파이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 세상에 대한 깊은 사색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기에 읽어 들어갈수록 제법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감시를 하고 감시를 당하는 '스파이', 조정받는 삶을 살고 있는 자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바꾸려는 '스파이' ... '스파이' 는 결국 우리들 모두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감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지닌 우리들. 섬찟하게도 나는 조지오웰의 '1984' 가 연상되기도 했다.

소설은 정체성을 잃고 감시를 받으며 조정받는 삶, 목적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회. 현대 정보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꿰뚫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고 혁명을 꿈꾸는 자는 독특하게도 '작가' 이다. 그리고 '책' 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재밌어. 그건데 그 재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하고는 좀 달라. 너무 재밌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뭔가를 생각나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 어떤 작가들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지금 여기의 문제를 고민하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어. 그런 작가들은 본능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것인가를 알아. " - 146쪽

"왜 책일까요?"
"책은 위험하지. 책을 대신할 유희는 많지만 책보다 생각을 깊이 전달하는 것은 없지. 책은 만드는 데 돈이 덜 들고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떠돌면서 불어나니까. 한때 작가는 시대의 양심으로 일종의 혁명가였어. 그리고 혁명가는 거의 모두 작가야. 그들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이야기를 남기지. 지배자들은 그래서 늘 책을 없애려도 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에 책은 육체가 사라져도 살아남는, 영혼 같은 거거든."
- 275쪽


기꺼이 패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소설의 작가는 혁명을 꿈꾼다. 사색과 내면의 대화를 강조하는 우아한 혁명을.

"고요한 밤의 눈처럼 아침이 오면 알게 되는 달라진 세상이 있다고." - 30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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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담고 있는 '혼불문학상' 작품들.
이번에 읽게 된 제 6회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을 포함해 총 3권의 혼불문학상 작품들을 읽어 보았고, <혼불> 역시 읽고 있는 중이기에 이번 이 소설은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기존의 혼불문학상 작품들이 과거 역사의 일면을 문제의식있게 다룬 것들이 많았다면, 이번의 <고요한 밤의 눈>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독특한 분위기와 구성으로 색다르게 다룬 것이었다.
등장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서로 스토리간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면이 많은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고 서사적이고 밀도가 높게 느껴졌다. 또 , 작품 속에서 작가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단면들을 많은 부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310페이지를 넘는 정도의 그리 많은 분량의 작품은 아니었음에도 꽤 많은 이야기의 전개를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읽고 읽고...
재미가 있으되 재미 때문에 아무 생각이 안나는 소설이 아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말한 그 소설을
나는 여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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