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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평점 :
콩가루 집안을 보여주는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들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저, 동영상 찍힌 것 같아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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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섹스 동영상요. 저도 어젯밤에 알게 되었는데 그쪽에서 협박을 하더라구요.”
식탁에 정적이 감돈다. - 10쪽
빠지는 것이 없는 집안인 듯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버지 서용훈은 국내 최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영화 산업과 건축업까지 손을 뻗고 있으며, 어머니 유미옥은 대대로 교수 집안에 대학교 이사장 딸로 유학생활을 마치고 결혼하여 우아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큰 딸 서혜윤은 두 사람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 받아 두뇌와 품격을 지녔으며 부모의 계획에 따라 모범생으로 자라왔다. 그에 반해 작은 딸 혜란은 화려한 명품치장에다 하고 다니는 일이나 차림에 가족들이 언급을 피할 정도이다. 다만 미모는 지닌편.
막장 드라마에 나올법한 범상치 않은 가족. 그들이 사는 집은 언제나 정적이 감돈다. 대화없는 가족. 식사자리에서 겨우 몇마디 짧은 말이 다다.
어느날 언니 혜윤의 발언에 가족이 발칵 뒤집힐 법도 한데 생각보다 평온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뒤에서 일을 해결해보려는 아버지 서용훈은 자신이 믿고 일을 맏기는 심부름꾼에게 일의 해결을 맡기게 된다.
둘째 딸 혜란은 자신이 평소에 바란 라운지바를 가지려고 부모님에게 약속을 받으려 언니 뒤를 조사하여 본인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음을 자신한다. 이에 어머니 유미옥은 자신의 우아한 삶에 부끄러운 이 일을 어떤 식이든 빨리 해결하고 픈 마음에 작은 딸의 말에 귀기울이게 된다.
과연 이 범상치 않은 가족의 딸의 동영상 유출 사건은 잘 해결되어질 수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집에는 소음이 없었다. 적막했다.
"그녀의 집안에서는 그 누구도 싸우지 않는다. 문제가 없었을뿐더러 혹시라도 문제가 발발하면 가족 개개인의 방식대로 각자 회피하거나 해결했다. 혜윤은 남들이 고요라고 말하는 그 적막함이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 (55쪽)
사실 그런 면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족의 모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대화가 부족한 가족, 끈끈한 가족 간의 유대가 예전만 못하고, 한 공간에 있되 서로의 감정이나 일상들이 공유되지 못한다.
사건이 해결되어지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그제서야 싸우는 가족. 그들의 말들을 들어 보면 모두 가족 안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의 짐들을 외로이 짊어 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의 부재로 관계 단절의 위태로운 이 가족에게도 희망은 있었다는 점이다.
"소중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젠 어떻게 해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절망을 느낄 때…… 이런 상황이 되기까지 얼마나 숱한 문제들이 있었는지 더는 돌아볼 기력조차 없었을 때, 그런 순간마다 화가 나고 슬프고 적어도 그 사람이 원망스럽다는 감정이 든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알더라도, 그 소리가 가끔은 소음일지라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대에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그 사람이 내는 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작가의 말)
유쾌하게 코믹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어 읽히는 재미가 술술있었으나 뒷부분에 사건 해결과 가족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부분에서는 갑작스러운 '감동' 이 조금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굳게 닫힌 가족의 방문을 여는 방법이 조금은 억지스러워도 용인이 되는 것 같다.
톡톡 튀는 유쾌한 블랙 코미디 한편을 즐겁게 잘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