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현기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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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뿌연 안개 속인지 어둠 속인지 한 남자가 옷 주머니에 양 손을 넣고 서 있다. 분위기가 쓸쓸하고 고독해 보인다.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는 올해로 등단 41년이 된 현기영 작가의 산문집으로, 2002년부터 2016년까지의 산문 37편을 묶은 것이라 한다.

책의 제목에서 '늙음' 에 대한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아니 책을 읽은 뒤 느껴지는 작가는 오히려 늙음, 그 뒤에 오는 죽음에 대해 자유로워진 듯한 느낌이다.

이 책에 담긴 산문들은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작가로서의 그의 일, 즉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까지 노작가의 사색이 묻어난 글들이다.

4부로 이루어진 책은, 그 각 부마다의 소제목은

1부 인생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뻔한데 뭐, 그렇게 힘들게 갈 것 있나
2부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3부 당신, 왜 그따위로 소설을 쓰는 거요
4부 늙으면 흙내가 고소해진다는 말

이 제목들에서 작가가 이 책에 담고자했던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그렇게 다가온 노년에 작가라고 왜 당황하지 않았을까.
그는 "인생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뻔한데, 뭐 그렇게 힘들게 갈 것 있나" 하며 탄식한다.


그가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순이 삼촌> 을 쓸 때는 소설가는 "4·3사건을 말하지 않고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 이라고 라고 생가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문학을 대하는 모습도 부드럽게 변했음을 고백한다.

"글 쓰는 자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각성이 생겼다. 이제는 비극에 서정과 웃음을 삽입하는 일을 꺼려서는 안 되겠다. (……) 그리고 싸우는 동안 증오의 정서가 필요했고, 증오가 가득한 가슴으로는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속이 느끼했는데, 이제 나는 그 사랑이란 두 글자에 대해서도, 그것을 노래한 사랑의 시에 대해서도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한다." - p. 74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현기영 작가의 41년 작가 생활의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더는 늙음에 대해 겁내지 않는 소설가의 이야기이기조 하다.

여담으로, 이 책에는 작가의 고향인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도 소소히 담겨 있어 그 부분들을 읽을 때면 제주도로 달려가고픈 충동이 일기도 했다.


"노경에 접어들면서 나는 이전과는 좀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다.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다. 이전 것들에 너무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흔쾌히 포기해버리는 것, 욕망의 크기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포기하는 대신 얻는 것은 자유이다. 그 자유가 내 몸과 정신을 정갈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전보다 오히려 젊어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얼굴은 주름 잡혔지만 심장만은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 그러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울림있는 늙어감이 담긴 산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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