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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노을이 붉게 내려 앉은 해질 무렵. 한 남자가 우뚝 서있고 그 뒤로 형체가 흐릿한 오가는 사람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쓸쓸하고 막막해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이 인생의 해질 무렵의 우리네의 모습인 것 같아 먹먹하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거장 황석영 작가의 신간 <해질 무렵>의 표지이다.
이미 그 표지에서 책의 분위기와 내용은 어렴풋이 짐작될 듯도 하다.
이 짧은 소설에는 두 화자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들의 지난 날과 현재의 이야기가 .
건축가 박민우는 60대의 나이로, 어느 날 자신의 강연이 끝난 후 낯선 여자에게 쪽지를 받게 되는데 그 여자는 바로 그가 잊고 지낸 과거의 첫사랑 '차순아' 였다.
그러나 그녀와는 연락이 닿지 않고 단지 '차순아'가 보낸 메일을 통해 그녀의 기억 속의 과거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또 한 명의 화자 정우희는 연극연출자의 꿈을 실현해 살기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며 연극 무대에 매달리는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다.
알바를 하며 알게 된 '검은 셔츠'라 칭하는 김민우와 연인처럼, 또는 오누이 같은 정을 느끼며 알고 지낸다. 그의 어머니와도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되는데 어느 날 뜻밖에 김민우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그의 어머니 '차순아' 역시 몇달 후 뇌졸증으로 생을 달리하게 된다. 정우희는 김민우가 남긴 노트북에 어머니 차순아가 남긴 글들을 읽게 되고 글 속에서 박민우를 발견하고 그의 강연장에 찾아가게 된다.
박민우의 기억 속의 유년 시절.
산동네 달골, 박민우 그 뿐만 아니라 동네 소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소녀 차순아. 그리고 그와는 다른 삶이라 생각하며 거리를 두며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재명이형, 째깐이, 토막이, 섭섭이형.
달골을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했던 박민우는 성공대로에 올라갈수록 첫사랑 차순아를 잊어가고.
그런 차순아의 삶 역시 박민우가 달골을 떠난 뒤 평탄치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삶 속에는 언제나 박민우가 있다.
전반적인 이야기는 황혼의 두 남녀의 젊은 날의 사랑과 그 기억들이며 안타까움과 아련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들의 과거의 삶에 그 시대의 척박함과 그 회한이 담겨 있고 그것이 결국은 그들의 현재의 삶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 나는 내 아이의 이름을 민우라고 지었습니다. 김민우. 나는 그 애가 우리처럼 어렵고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 " - 177 쪽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보아야 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에 관한 이야기이다. " - ' 작가의 말' 중에서
놀랍게도 20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에도 이 소설은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꽉 채우고 있다. 한 편의 드라마로 영화로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쉴새없이 달려가다 결국 인생의 해질 무렵에 되돌아 보는 내 모습이 어떨지, 나 역시 후회와 회한은 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지금 살아내고 있는, 견뎌내고 있는 나의 현재가 애처럽고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소중한 독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