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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금' , '주름' ... 최근 내 눈에 자꾸 띄는 박범신 작가의 책 제목들이 자꾸 호기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결국에는 읽고야 만다.
"소멸하는 존재들에 바치는 '시간의 주름'에 관한 기록."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이겠다.
사실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그 '시간의 주름'이라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소설의 시작 부분의 화자는 김선우이다.
1997년 겨울, 김선우의 아버지 김진영이 가출을 했다.당시 50대 중반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던 아버지가 가출하신 것이다.
2년 후, 아버지가 시베리아에 계시다는 소식을 받게 된 선우를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바이칼호로.
그리고 화자가 바뀐다. 이제부턴 김선우의 아버지, 이 소설의 주인공 김진영이 화자이다.
당시 50대 중반의 나이에 주조회사 자금담당 이사이며 성실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김진영은 , 어느 날 우연히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천예린은 그보다 연상이며 소위 팜므파탈적인 오십대 중반의 여인이다. 매혹적이며 사악하기까지한 그녀에게 김진영은 걷잡을 수 없이 빠져 들게 되고, 자신의 삶을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천예린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받치던 그는 결국엔 회사의 돈까지 끌어다 바치게 되고
얼마 후 사라져 버린 천예린을 찾아 김진영은 회사, 가족을 팽개치고 회사의 자금을 횡령해 자신을 떠난 천예린을 쫓아 떠난다.
천예린의 발자취는 아프리카 대륙을 거쳐 스코틀랜드를 지나 시베리아 바이칼에 이른다. 처음엔 배신감에 칼을 품고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게 한 그녀를 쫓아 가던 김진영은 그 행로에 고난과 시련을 겪기도 하며 변화하게 되고, 어렵게 도착한 북극해 오크니에서 만나게 된 천예린을 끝내 죽이지 못하고 광포한 사랑의 나날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들은 매일 죽었고 매일 다시 태어나는 탐욕스럽고 기이하면서도 광란같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결국은 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던 천예린과 그런 천예린 곁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김진영에게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는 피할 수는 없게 되고...
<주름>은 어느 일상적인 50대 중반 남자의 파멸과 생성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안에 시간의 유한성을 말하는 늙음, 인간의 삶의 본질과 자유, 죽음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과실 속에 씨가 있듯이, 태어날 때 우리는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이라는 2개의 씨앗을 우리들 육체에 심지어 박고 태어난다. 생성과 소멸은 경계없는 동숙자이다..... 사랑의 운명도 그럴는지 모른다. 말년에 아버지가 겪었던 인생도 그렇다.... 몇 년 사이 전 세대의 인생을 살다간 아, 아버지." - p.10
그러기에 김진영의 노년의 삶의 평범한 궤도에서의 이탈의 몇 년간 삶은 더욱더 충격적이다.
"삶이란 때론 그렇다. 평온하고 안정된 삶일수록 은밀히 매설된 덫을 그 누구든 한순간 밟을 수 있다는 것. 생이라고 이름 붙인 여정에서 길은 그러므로 두 가지다. 멸망하거나 지속적으로 권태롭거나."
- p.103
어느 날, 낡아서 실밥이 늘어나 있던 와이셔츠 단추 하나를 잡아매다가 그는 그처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결국 이 모든 사단의 시초가 되고 홍수 같이 밀려드는 새로운 세상에서 불안과 소외를 느끼게 된 그는
그 때 마침 천예린을 만나고부터 "지금까지의 삶은 헛것이었다." 며 자신의 삶에 대해 반란을 꿈꾸고 삶의 정체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그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쫓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대체로 나를 한 인간으로서 대등하게 존중해주었다는 바로 그 점이었다. 내 자아라고 생각했지만, 기실 사회구조 속에서 훈련받은 가짜 자아, 그 허위를 깻박치고, 평생 억눌려 있던 본질적인 나의 다른 자아를, 그녀는 부드럽게 끌어내어 동등한 우의로 그것을 존중해주었다. 내가 수치스럽다고 여기어 한사코 폐기 처분 했던 본능을 존중해준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내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었을 뿐 아니라,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대등하게 그것을 받아들여 주었다. " - p 294
병이 깊은 시한부 삶을 살던 천예린은 김진영을 떠나 적도에서부터 시작해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을 지나 시베리아로 향한다. 즉 죽음을 목표로 위도를 거슬러 올라 간 것이다. 그녀는 지나온 삶을 재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적도에서 시작한 여행. 우기의 적도는 유년기와 청년기로 온갖 생명이 다투어 깨어나고 무섭게 무성해지는 곳이고,
아프리카는 청춘의 한낮,
파리쯤 오면 부드러운 중년의 계절을 만난듯하고.
북극해, 시베리아는 황량한 노년의 겨울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베리아 북극해에서 생을 마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럼 왜 시베리아 북극해일까.
"누구든 생의 중심이라 할, 죽음에의 북진을 언제나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이 사멸의 북행길로 우리를 몰고 와 마침내 북극해 밑, 절대 고독의 그 심연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만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 p.259
북극해 깊은 바다 밑에 이르면 생과 멸이 없을테니 그곳에서 비로소 유한성의 감옥을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워질 거라고 그들은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국
숙명이라 부르는 인생의 예비된 불가항력적 프로그램에 자신이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살던 한 노년의 남자가 팜므파탈적인 한 여자를 만나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 궤도를 이탈하여 처절한 저항 끝에 끝내 무릎꿇어야 했던 그의 모습의 기록을 보여 준다.
그에게 , 우리에게 시간의 주름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의 내용에 사실 적잖이 놀랬다. 그 배경이 IMF로 상징되는 세기말의 환란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덮치는 사회적 파멸과 한 개인의 인생의 파멸, 그리고 남녀 사랑의 파멸 등을 소재로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를 담았다는 것도 그랬으나
그 세밀한 표현들을 읽으며 인상 지푸리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 것이 주가, 다는 아니기에 소설을 읽으며 작가에게, 그의 글에 무척 감탄하며 읽었다.
<주름>은 , 초고가 1999년인 <침묵의 집>이란 제목의 작품인 두권 2600매의 긴 소설을 2006년에 1500매로 깎아내어 <주름>으로 제목을 바꾸어 재출간 , 다시 지난 겨울 300여매쯤 깎아내어 만든 신작 아닌 책이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작가가 다듬어 아프게 깍아 낸 책에서 그는 말한다.
" 평생 내가 손으로 잡고 싶었던 건 바람이었도, 평생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시간의 주름' 이었다고."
- 작가의 말 중
참으로 오랜만에 글 잘 쓰는 작가의 몰입도 넘치는 책을 접하며 그의 또 다를 책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