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가가 하는 일이란.. 소설 쓰기?

소설을 쓰는 사람 김연수 님이 말하는 소설가의 일은 그저 '쓰기'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 p. 19

소설가에게 재능은?
재능은 소설은 만들어 내지 않으니 재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소설을 쓰지 않을 죄책감을 더는 방법이다.
그러니 그 재능보다 소설가를 만드는 것은 열정, 즉 소설가는 글쓰기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러니 그것을 매일 할 수 밖에 없다.

글쓰기를 한다. 초고를 작성한다.
여기에는 작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른바 '할리우드식 이야기 공식' .

(보고  듣고 느낀 사람+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 생고생( 하는 이야기)

여기에 소설가는 등장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 이해가 없다면  한 문장도 쓸 수 없다.

그래서 이 기본 공식에 '왜'  와 ' 어떻게' 를 번갈아 붙여 문장을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지극히 단순한 문장을  '빈도수 염력사전(작가가 일컫길, 표제어가 빈도순으로 배치된, 한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와 표현일 수록 뒤쪽에 있슴.) 을 이용해  '자기가 쓴 것을 좀 더 좋게 고치기'를 한다.

이렇게 인과관계의 사슬이 만들어 지면 다음은  '핍진성' 이 확보되어져야 한다.

"핍진성이란,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이다."
- p.80

이 '핍진성'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의미기도 하고 , 허구인 소설에 독자가 느낀 감정을 실재로 만드는 토대가 된다.

이렇게 소설가의 일의 서론이 마련되면 다음은 소설가의 일을 본격적으로 들어갈 차례!

초고, 작가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토고( 토하기 직전까지  참고 쓰는 원고) 를 다시 쓴다.
' 쓴다 - 좌절한다- 곰곰히 생각한다- 다시 쓴다'
를 반복하여 소설 쓰기의 절정에 오르기!

"먼저 소설가가 되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뭔가를 써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
   - p. 104


소설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이야기' ,
비틀어 말하면 ' 평생 어둡고 습하고 음침한 곳에서 버둥대는 이야기' 라 한다.

즉, 앞에서 말한 공식에 의하면 '생고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절망, 좌절' 이 되겠다.
그리고 이 절망은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게 된다.

주인공의 절망은 그의 표정과 몸짓, 행동으로 보여주며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절망에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들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소설에서는 흔한 일을 흔치 않게 쓸 때 미문이 된다.

여기서 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닌, 문장을 고치는 사람, 그것도 잘 고치는 사람, 만족할 수 있게  충분히, 많이 고치는 사람이다.

소설가가 이 미문을 쓰려면, 감각적 언어를 쓰려면, 감각의 세계에 안기려면 어째야하나.

1.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소설을 ' 쓰면 ' 된다.

2. 쓴다. 토가 나와도 쓴다.
소설가의 첫번째 일은 초고를 쓰는 일이고,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쓸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소설가의 두번째 일, 모르는 것을 알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게 세번째 일이다.

3. 서술어 부터 시작해 토고를 치운다.

4.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 까지 계속!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생각이 아닌 감각이 필요하다.

5.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

" 아는 사람은 쓰지 못하고, 쓰는 사람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느끼려고 할 뿐. 더 많이 느끼고 싶다면. 늘 허기지게, 늘 바보처럼  굴어야 한다. 미식가보다는 지금 자기 앞에 놓인 이 평범한 일상을 강렬하게 맛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    - p. 224


마지막으로, 저자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이란,
느리게 소설을 쓰기.

" 느리게 쓴다는 건 나만이 바라본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이 세계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 알게 될 때까지 쓴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떤  플롯에 의해 짜여졌으며, 그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지 알 때까지 쓴다는 뜻이다."  - p.245


이 책의 작가 김연수 님은 천상 '소설가' 이다.
그가 말한 소설가의 일들을 모두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소설가' 이다.

이 책에는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한 것만을 담지 않았다.
'소설'  혹은 '글쓰기' 라는 말들을 '인생'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이해해도 충분히 마음에 와닿는 글귀들이 즐비하다.
일일이 줄을 긋기도, 옮겨 적기에도 부족한 그 문장들이 너무나 많아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쓰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 p.141


"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      - p. 174


사실 이 책은 서평을 쓰는게 무의미하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냥 읽으면 된다. 읽고 작가에 나를 이입시키면 될 듯 하다.

책을 읽으며  '킥!킥!'  웃음은 또 얼마나 터지든지..
유머러스한 문장이며 , 식상하지 않은 표현이며..
작가님의 글을 왜 이제서야 읽어보았을까 싶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 소설을 쓰는 이유를 보면 그가 어떤 소설가인지 알 수 있다.  그 글들이 곧 그가 될테니까.

"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 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느냐는 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소설을 쓸 수 밖에 없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망과 오해와 불행 속에서 죽어간다. 그런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 역시 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내가 쓰는 소설의 결말은 여기까지다. ᆞᆞᆞ 고통과 절망은 우리가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뜻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충분히 오래 살 테니, 우리 모두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겠지만 우리가 간절히 소망했던 일들은 모두 이뤄지리라."    - p. 262,263, 264


이제부터 읽는 책들이, 소설들이, 그냥 그렇게 읽혀지지만은 않을 듯 하다.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을 새롭게 읽고 새롭게 이해하려고 조금의 노력이 더 해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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