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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지음, 황규백 그림 / 청림출판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한국인 최초 괴테금메달 수상' 한 서울대 전영애 교수가 쓴 첫 에세이집이다.
성함이 좀 낯익다 싶었는데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에서 이분이 번역하신 몇 권의 책을 접한 적 있다.
'인생을 배우다'라는 책의 제목이 사실은 조금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저명한 저자에게서 삶의 가르침을 얻고자 읽은 이 책은 뜻밖에도 나의 마음을 너무나 따뜻하게 데워 놓았다.
이 책 안에 모인 글들은 저자가 독일과 한국을 자주 왕래하면서, 삶과 글 사이를 넘나드는, 삶의 모퉁이 모퉁이에서 마음에 오간 것들을, 또 전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 둔 것들이다.
저자는 '내 제자들에게, 제자들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또 그런 맑은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 보았다고 말한다.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저자 나름의 깨우친 삶의 지혜들이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서울대에서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2008년부터 2013년 까지 방학중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으로 근무를 하는 등 배움의 기회를 쫓아 어디든 달려다니며, 그 열정으로 살인적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시인으로, 학자로 살아 온 저자가 최근에는 독일에 차후 시인 박물관이 될 곳에 작은 한옥 정자를 짓고, 한국 여주에는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여백서원'을 지어 두 나라의 문화교류를 위했다고 한다.
그 모토가 "맑은 사람들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시를 위하여" 라고 하니, 그 것만으로도 저자의 단면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인생을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저자가 만난 소중한 인연들의 이야기에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 삶 자체가 기쁨이고 선물인 사람들의 모습을 전해주면서 그냥 무슨 수를 쓰지않고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면서, 남을 배려하고 격려하며 살면, 조금 더 잘 살아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소중한 인연, 독일의 홀레씨가 임종을 앞두고 저자의 연구를 위해 가치 평가조차 할 수 없는 200여 권의 귀중본들, 책들을 정리해 보내시고 세상을 떠난 이야기.
중병에 걸려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초인적인 배려와 아름다움을 부여한 친구 에리카의 이야기.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딸에게 교육을 감당할 형편이 안된 병깊은 어머니는 딸에게 세상을 헤쳐갈 힘을 길러주기 위해 마라톤을 시킨, 엄마가 해줄수 있는 그 마지막 선물로 , 그 힘으로 빛나는 음악인이 된 딸의 이야기.
그리고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셨으나 책만 보면 일일이 한지에 필사하여 읽어 다 외우셨던 저자의 어머니의 간절한 필사본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의 제자들이 만들어 오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속깊은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
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저자를 바른 삶으로, 또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신뢰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이 글들을 읽는 나의 마음도 이리 따뜻히 데우고 좀 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였으니.
" 사람인지라 때로 택해서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후회가 아주 없을 수야 없다. 그래도 온 지혜를 모아서 어렵사리 한 선택, 혹은 한때 좋아했던 추억이 묻어 있는 선택, 혹은 정말이지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저 어려웠던 선택을 기억하며 견뎌가야 한다고."
- 본문 p. 29 중에서
또, 나는 두 아이를 둔 엄마인지라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일상의 이야기 부분에서의 저자 글들도 많은 공감이 되었다.
"세상에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정말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제 앞가림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아이들 마음속에 뜻이 자리 잡도록 기다려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뜻이 있으면 공부는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점에 금방된다. 남이 공부를 가르칠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고, 마음속에 없는 뜻은 남이 절대로 불어 넣어줄 수 없다. 이 세상에 발붙이고, 이 험한 세상을 제 힘으로 헤쳐나가게 하자면 남은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배려하고 서로 도와야 하는 것임도 가르쳐야 한다. "
- 본문 p. 49 중에서
"어느 부모인들 그렇지 않으랴마는 아이들이 너무도 소중해서 나는 그 애들이 있는데 무얼 더 바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치지는 못했다. 그 아이들의 인생에 내가 개입을 해서, 그 아이들에게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해줄 자신이 없었다. 언제든 어렵지만 기다려 주었다. 기다리면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눈부셨다." - 본문 p.234 중에서
저자가 평생해오는 일, 그 일 '문학'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엿볼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글을 읽어오면서 문학이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남기고, 전하고, 읽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글에는 사람이 담긴다. 현실에서는 일일이 다 만나낼 수 없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만나보는 일은 세상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의 갈피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은 아마도 함께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글을 배우고 읽는 궁극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 본문 p.252 중에서
그리고 젊은이에게 말한다.
"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에 다들 목을 메달고들 사는지. 그 많은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얼마나 불행한지. 쓸데없는 것들을 좀 버리면 자유로워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제법 할 수 있다."
- 본문 p. 279 중에서
책을 읽으며 제법 많은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고, 많은 페이지에 메모플래그를 붙였다.
저자의 늘 고민하고, 탐구하는 열정적인 학자의 모습에 감탄하고, 감성이 듬뿍 담긴 편안한 문체로 담은 일상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 안에서 보여주는 혜안에 놀라고, 또 긍정적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지혜를 일깨워주심에 고마움도 느낀다.
여담을 하자면, 읽는 내내 자꾸 떠오르는 한 분이 계시다.
바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 고 장영희 교수님' 이시다.
서강대 영문학 교수이자 번역가 또, 학창시절 영어교과서 '두산 장'하면 떠오르는 그 교과서의 집필자이셨던 분이다.
암투병을 하시면서도 독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쓰셨고, 내가 그 분의 글에 반한 계기가 된 책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라는 에세이집이었다. 생전 마지막 책이어서 아쉬움이 너무나 컸었는데 따뜻함과 희망의 에너지를 담은 그 글들에서 받았던 느낌이 전영애 교수님의 이 책에서 유사하게 느껴져 참으로 기뻤다.
끝으로, 참 맑고 바른 마음이 담긴 예쁜 책을 읽게 되어 너무나 반갑고 마음 따뜻해지는 독서의 시간을 갖게 되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