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도 못해봤다.
내 기억을 바꾸고,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심는다는 걸.
누구나 슬픈 추억, 행복했던 기억, 잊고싶은 순간, 그리고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그 날들이 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누군가는 기억을 사고
그 어떤이는 누군가의 요청에 따라 기억을 디자인해 판다.
그 결과는??
의억.
의자.
의억기공사.
이력서.
그린그린.
레테.
메멘토.
엔젤.
우리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들이 등장한다.
처음엔 이게 뭐지?하고 어색함에 사뭇 긴장했으나,
작가의 필력이 이내 내 불편함을 궁금함으로 이야기를 잡게 해주었다.
이 시대와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또 언젠간 정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의억과 의자등이 현실세계에 자리잡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문득문득 스쳐갔다.
일본의 배경과 일본스런 스토리라고도 생각이 되나,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부작용인 외로움과 싸우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몸부림이
현실적이지 않으나 너무 거부감 없이 현실에 비추어 볼 수 있었다.
아마가이 치히로와 마쓰나기 도카
이들이 펼쳐나가는 다정한 거짓말 속 기억들이 이야기 중심이다.
왜 그 기억들을 심어야 했는지, 의억기공사는 어째서 그러한 스토리를 만들었는지.
그 둘은 어떠한 관계였고, 그린그린과 레테와 메멘토는 어떠한 방향으로 쓰이는지.
상상해보지도 꿈꿔보지도 않았던 미래에 현실이 될것만 같은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타인이 만든 가공의 이야기라니,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라고 부정을 해보지만, 어느새 치히로는 그 의역에 의한 꿈을 꾼다.
"기억이란 건 마음먹기에 따라서 너무나 쉽게 왜곡되기 마련이니까.
나노로봇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기억울 위조해.
'펠스 에이커스 사건'이라고 들어봤어? p39
"그놈들은 추억을 파고 들지 않아. 추억이 없다는 걸 파고들지." p78
"내가 여섯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의 기억을 지우려고 한 것은 이런 상실감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와 같은 것이 끼어들 틈도 없이 철저하게 무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분기점을 하나도 남김없이 부숴버리고 싶었다. p165
"그녀가 최후의 순간까지 허구의 힘밖에 믿지 않았다는 게 나는 슬펐다.
비눗방울과 같은 연약한 행복을 좇는 데 몰두한 나머지
눈앞의 확실한 행복을 높치고 만 어리석음이 가여웠다." p320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며 내게 살이 되는 기억을 추억이라 부른다.
추억속에는 따뜻함도 차가움도 어둠도 밝음도 있지만,
이 책을 읽은 나는 어쩐지 그 모두가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부르는 추억이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다정함일지라도,
나는 내 자신의 모든것이 좋아졌다.
외로움에 기반을 두고 과거를 성형하는 쾌감을 맛봐왔던 도카와
인공적인 거짓 기억을 부정하며 그 기억속에 살았던 치히로.
그들이 써내려간 너의 이야기가 도카의 나를 위한 이야기었다니...
웬지 아련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