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노래 -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
진재운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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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노래》 | 진재운 지음

"진 감독은 나무마다 사투리가 다 다른 것 알아요?"

“나무의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나무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첫 문장부터 ‘공주님’은 나무의 정령 같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무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이야기는 현실보다 판타지에 가까운데, 그녀가 살아온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미지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대에 단돈 44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림을 그리고, 연구 목적으로 폐교를 구입하고, 그 곳에서 예술을 보여주며 살았던 공주님은 인생의 후반부에 니카라과의 산을 사서 나무를 심는다. 엄청나게 큰 나무 앞에서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고, 마야와 북유럽 신화 속 나무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한 사람의 실제 삶인데도 어딘가 신화 속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이 재미있는 건 그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잎이 없어야 할 때 잎이 있고, 꽃이 피어야 할 때 꽃이 피지 않는 것. 그녀는 이런 변화를 보며 “정말 나무들이 갈팡질팡해요”라고 말한다. 기후변화를 평균기온이나 탄소 농도 같은 숫자로만 접했던 나에게는, 매년 기다리던 꽃이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연구자의 경험이 있는 그녀는 과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안개가 몸을 스치는 감각이나 꽃향기,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의 침묵처럼 논문으로 정리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이다.

지구를 인간이 마음껏 쓰고 버려도 되는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하대한다’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절제 없이 소비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거대한 숫자보다 눈앞의 나무와 꽃을 바라보게 한다.

《나무의 노래》는 현실인데 판타지처럼 읽히고, 신화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다. 나무의 언어를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자연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위 도서는 생각의 힘으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생각의힘 #나무의노래 #진재운 #다큐멘터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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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 지음, 윤희환 옮김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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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서》 | 가산 카나파니 지음

소설을 읽으며 지금의 팔레스타인과 겹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이 책은 1962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만큼 이 갈등과 싸움, 고립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1948년 나크바부터 현재 2026년까지, 긴 시간 동안 계속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첫 번째 단편인 「뜨거운 태양 아래서」에는 ‘떠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고향을 떠나 쿠웨이트로 가기 위해 물탱크 안에 몸을 숨긴 세 사람. 뜨거운 사막과 검문소, 좁고 폐쇄된 물탱크라는 공간이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듯했다. 특히 마지막에 던져지는 “왜 두드리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은 세 사람의 죽음만을 묻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질문처럼 오래 남았다.

이 작품집에는 전쟁과 추방,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올해 《노 어더 랜드》와 《힌드의 목소리》 등을 통해 영화로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동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리적 거리만큼 내 마음과 관심도 멀리 있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네가 오렌지의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너는 유년기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오렌지를 재배했던 농부의 말에 의하면, 변혁이 일어나 낯선 사람이 물을 주면 오렌지나무는 말라 죽는다는 것이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가는 와중에도 기억하고, 말하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다 보니 출판사를 통해 소개되지 않는다면 이런 작가와 작품이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 출간된 지 아주 오래된 팔레스타인 작가의 문학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미 있는 책을 더 예쁘게 만드는 일도 물론 필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새롭게 소개하는 일 역시 출판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다양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위 도서는 열림원으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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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소녀
브렌다 데이비스 지음, 유영일 옮김 / 올리브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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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소녀》 | 브렌다 데이비스 지음

한 사람의 삶을 빼앗는 데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회가 붙인 하나의 이름과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열일곱 살 노라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도덕적 결함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고, 그렇게 빼앗긴 삶을 47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간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을 ‘결함’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빼앗긴 삶을 어떻게 다시 자신의 것으로 되찾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노라가 겪는 일들은 가혹하다. 아이를 빼앗기고 자신의 몸과 행동을 통제당하며, 살아남기 위해 “다들 제가 길들여진 토끼처럼 굴기를 원했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을 숨기는 법을 배운다. 한 사람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고 ‘환자’나 ‘결함자’라는 이름으로만 바라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노라의 삶을 따라가며 보게 된다.

400쪽이 넘는 두꺼운 소설이지만 노라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 오랜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노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노라가 자넷에게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자넷은 곧바로 노라가 노래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노래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취미를 갖는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빼앗겼던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다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단순한 슬픔이나 분노만 남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도 인간이지만, 다시 그 삶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너무 늦게 찾아온 치유였지만 끝내 노라가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던 이야기다.

*위 도서는 올리브나무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올리브나무 #갇힌소녀 #브렌다데이비스 #소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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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셋째 밤 ㅣ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3
일월명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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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셋째 밤》 | 일월명 외 8인 지음

‘한국 공포 문학’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공포가 담겨 있었다. 조선시대가 배경인 이야기부터 오늘 날의 방 탈출 카페, 직장 회식, 건설 현장의 산업재해, SF적인 요소까지. 단편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달라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무서운 것을 잘 못 본다. 특히 이미지에 약해서 무서운 소재의 만화나 드라마, 영화는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런데 공포소설은 조금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내가 경험한 만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을 그대로 마주하는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이었다. 직장 회식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해 두 사람이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설정도 재미있었고,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자기 욕심대로 움직이려는 것이 얼마나 섬뜩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안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건설 현장에서 사람이 죽어도 사고를 수습하고 조용히 덮는 데 급급한 현실, 여전히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건물을 올리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공포는 단순히 귀신이 나타나는 데 있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의 잔상이 현장에 남아 있는 것 같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을 새로운 렌즈로 바라보는 소설들을 몇 편 읽었는데, 〈호러 심청〉도 재미있었다. 너무 익숙한 ‘효녀 심청’이라는 이야기를 호러로 바꾸어 놓으니 원래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전설이나 괴담만을 떠올렸던 나에게 이 책은 한국 공포 문학의 범위를 새롭게 보여주었다. 무서운 것을 잘 못 보는 나도 각기 다른 방식의 공포를 따라가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단편집이다.

*위 도서는 르온서평단(단단한맘&레이첼)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았습니다.

#황금가지 #단편들한국공포문학의밤 #르온서평단 #단단한맘_레이첼서평단 #일월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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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 -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
은모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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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 | 은모든 지음

나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니면서 독립하여 서울에 살게 되었다. 살아보니 서울살이가 너무 좋았다. 큰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웬만한 건 다 있다. 내가 살던 곳은 역세권은커녕 버스 배차 간격도 답답할 만큼 길었으니 서울의 편리함이 더 좋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역시 사람은 한양을 가야 해. 여건이 된다면 평생 서울에서 살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렇게 서울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서울을 잘 즐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조금 머쓱하다. 늘 가던 곳에 가고, 익숙한 길로 다니고,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데에는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서울 풍류》를 읽으며 내가 아직 모르는 서울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책은 맛, 멋, 흥으로 나누어 서울 곳곳을 소개하는데 작가님이 경험한 노포의 음식부터 궁궐과 미술관,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 한강과 산책길까지 작가가 직접 보고 먹고 걷고 즐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옛사람들이 성벽을 따라 하루 종일 걸었다는 ‘순성놀이’ 이야기를 읽고는 나도 날씨 좋은 날 한양도성을 한번 걸어보고 싶어졌다.

반짝반짝하고 깔끔한 서울의 모습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통해 오래된 건물과 골목, 궁궐처럼 시간이 쌓인 서울의 모습도 꽤 근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서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서울을 알게 되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책 속에 적어둔 곳들을 하나씩 찾아가 보고 싶다. 특별한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어도 좋다. 평소 지나치던 길에서 잠깐 멈추고, 조금 돌아서 걷고,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 그렇게 서울을 조금 더 부지런히 좋아해보려고 한다. 서울에 사는 일이 좋아서 서울에 왔는데, 《서울 풍류》를 읽고 나니 이 도시를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위 도서는 인플루엔셜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인플루엔셜 #서울풍류 #은모든 #에세이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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