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으로 인생의 중심을 잡는 법
전수진 지음 / 북라이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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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으로 인생의 중심을 잡는 법》 | 전수진 지음

주변에 취미로 발레를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도 나는 사실 발레를 잘 모른다. 그나마 시각적으로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탓에 공연은 몇 번 보았지만 발레에 대해서 고찰한 경험은 없다. 전수진 기자님의 《발끝으로 인생의 중심을 잡는 법》은 발레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삶의 이야기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의 중심을 잃고 바닥을 쳤을 때, 나는 우연히 발레를 만났다.”

20여 년간 기자로 일해온 저자는 인생의 중심을 잃고 바닥을 치던 시절 우연히 발레를 만났다. 몸도 마음도 굳어가던 나이에 시작한 발레는 어느새 10년 넘게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저자는 몸의 균형뿐 아니라 삶의 균형도 다시 배워나간다. 기자인 저자가 묘사하는 서툴고 흔들리는 순간들의 이야기가 좋았다.거울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좌절할 때도 있지만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솔직하게 말해준다:

책에서는 발레와 삶을 연결하며 '중심'과 '바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저자는 중심을 잃고 바닥을 쳤을 때 발레를 만났고, 발레는 그에게 바닥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바닥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 바닥을 제대로 딛어야 그 힘으로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는 저자의 경험은 위태로운 외줄을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학생 때 좌절감이 들 때마다 그냥 연습을 했어요. 밤에도 하고 아침에도 하고 계속이요. 그러다 보니 결국 끝까지 남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남는 꾸준함을 이기는 건 없어요. 잘할 때까지 하면 잘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직업을 20년, 발레라는 취미를 10년 동안 해내는 저자는 강한 지구력의 소유자다. 성장보다 지속을 말하는 책이 많지 않은 시대라서 《발끝으로 인생의 중심을 잡는 법》이 더욱 반가웠다. 잘하는 사람보다 끝까지 남는 사람이 되기를, 높이 뛰는 것보다 오래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기를. 책에 인용된 무용수 서희 님의 말처럼 이제는 "높게"보다 "길게" 가고 싶다는 태도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발끝으로 인생의 중심을 잡는 법》은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에 대해 발레를 통해 이야기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잡는 것. 그런 삶을 응원하는 저자의 다정한 마음이 오래 남는다. 더 높이 가는 삶보다 더 오래 가는 삶을, 최고가 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삶을. 어쩌면 인생도 발레처럼, 높게 날아오르는 사람보다 길게 춤추는 사람이 결국 끝까지 무대에 남는 게 아닐까.

*위 도서는 북라이프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북라이프 #발끝으로인생의중심을잡는법 #전수진 #발레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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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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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위화 지음

📖
“문학에 또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소설이 있다니, 천천히 잠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잠에서 깨는 것 같은 소설이 있다니,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

위화 작가님을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 선생님께서 《허삼관 매혈기》를 추천해주셨는데 소설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당시 한 작가가 좋다하면 그대로 파헤치던 나는 도서관에 있던 《인생》, 《형제》를 연달아 읽었다.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한 문화대혁명, 그리고 가깝다면 가까운 나라 중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매혹적이었다.

작가님의 에세이가 출간된다고 해서 올라오는 포스팅을 기다리다가 감사하게도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서평단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를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만나고,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적친밀감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적은 산문에는 딱 그 나이 때의 악의는 하나도 없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도 있고, 이것이 시대와 맞물려 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사건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작가님은 조국의 변화라는 거대한 해류 속에서 그저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파란색 바다를 보고 싶어 끝없이 헤엄치며 나아가는 소년을 상상하며 읽었다.

“밀물 때 바다에 들어가 파도와 사투를 벌였을 테지. 그러나 물과 친하다는 게 무엇이냐. 비유하자면 그것은 방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방언은 고향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다. 아무리 물과 친하더라도 고향에 있는 강이나 바다의 성질을 이해할 뿐이지, 고향을 떠나고 나면 더 이상 물과 친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해가 바다 위로 떨어질 때, 그것이 나와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먼 것 같기도 했다. 해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달이 떴다, 둥그런 달이. 별이 떴다, 여기저기 조금씩”

나는 아직 중국을 가보지 않아서 내가 보고 경험한 것들로만 상상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해가 질 때 수영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예전에 나이트 다이빙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몰과 동시에 바다로 들어가 마음껏 헤엄치고, 다시 물 위로 올라왔을 때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 바다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작가님도 같은 하늘을 보셨을까?

“달빛은 금색이야, 은색이 아니라.”

🫂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아들이 두 살 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내게 물었다.
“아빠, 나는 몇 년 살 수 있어?"
나는 말했다. "100년."
아들은 울음을 터트리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100년밖에 안 된다니, 너무 짧아."
나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 "천 년."
아들은 계속 울었다. "천 년이라니, 너무 짧아."
다시 말을 바꾸었다. "만년."
아들은 울음을 그치고 물었다. "만 년이면 얼마나 길어?"
나는 말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길지."

생과 죽음을 깨달은 아들에게 만 년은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아빠의 다정함이 느껴진다. 작가님의 아들은 이 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 '끝없이 넓다', ‘한없이 아득하다' 같은 말을 몰랐다. 바다를 보고 나는 그저 멍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처음 느낀 건 나중이 아니라 처음 바다를 보았던 그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비록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때가 맞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처음 느낀 순간이 언제였을까, 계속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언젠가 발견한다면 반드시 기록에 남겨야지.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면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수줍어진다. 열린 창문에 들이치는 장대비처럼 나는 작가님의 산문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책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

“조금만 더 있어요.”
몇 번 ‘조금만 더'가 이어진 다음, 아버지는 더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가야했고 나는 울었던 것 같다.

*위 도서는 푸른숲으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푸른숲 #위화 #산곡미풍 #위화산문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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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을 기르는 일 - 완벽하지 않아도 매일 성장하는 태도에 대하여
수풀림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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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을 기르는 일》| 수풀림 지음

🔖
저는 살아 있는 게 좋아요. 이 아름다운 삶을 더 마음껏 즐기고, 발길이 닿는 세상의 구석구석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제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크기가 저절로 커지지는 않더라고요. 이왕 태어났다면, 스스로 더 마음에 드는 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꾸준함을 기르는 일》은 제목을 봤을 때 습관 형성에 관한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나를 이해하고 대하는 태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오래 하지 못하면 의지가 부족하다고 여기곤 한다. 나도 무언갈 끝까지 끌고 나가는 힘(의지나 지구력 등)이 부족해서 고민이 크다. 나는 꾸준하지 못한 이유를 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오래 못 가면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 원인을 의지가 아니라 자기 이해에서 찾는다. 이 부분이 꽤 새롭게 다가왔다.

🔖
도전한 시간은 내가 ‘실패’라고 이름 붙일 때에만 실패가 된다. 이렇다 할 결과가 없더라도 도전을 경험으로 소화해 버리면 타격이 없다.

모든 경험은 내 삶에 머물고 언젠가 쓰이기 마련이다. ‘찍먹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살아보자. 그럼 우리 사전에 실패란 없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깝게 느껴진다. 나는 그 시간들을 모두 매몰비용처럼 생각했는데, 저자는 모든 경험은 결국 내 안에 남아 언젠가 쓰인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시작하기 전부터 실패할 경우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찍먹 경험을 쌓는다'는 표현을 보니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꾸준함은 매일 일정량을 똑같이 해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하면서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책 소개에 있는 이미지가 인상 깊어서 캡처해 왔다. 매일 최고의 컨디션일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계속 이어가는 태도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
작은 일을 계속 반복한다는 자체로 자기 신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무언가를 끝까지 해냈을 때 남는 건 결과보다도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만족감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더 많이 해내야겠다는 마음보다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흐름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꾸준함을 기르는 일》은 나에게 꾸준함이란 끝까지 버티는 능력이 아니라,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오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책이다.

*위 도서는 다산북스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꾸준함을기르는일 #수풀림 #다산북스 #서평단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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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제5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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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교과서에서 실려 있던 《군주론》, 예전에 공부 열심히 하는 이미지의 아이돌이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무게가 느껴지는 제목,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책일까? 이번에 까치글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친구들과 함께 읽고 독서모임을 가졌다.

한국인 정치사상계의 대표 학자인 강정인 교수님과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김경희 박사님이 직접 옮긴 이 책은 정치와 이탈리아 역사에 문외한인 나 같은 비전공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찬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설명과, 책을 따라가다 보면 생길 수밖에 없는 궁금증을 미리 예상한 듯 달려 있는 주석이 일품이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경험과 이 책을 깊이 탐구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했다.

🔖
신생 군주는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더라도, 새로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주민들의 호의가 항상 필수적입니다.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시민들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입니다.

지적인 훈련을 위해서 군주는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데, 이는 특히 위인들의 행적을 조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전쟁을 수행한 방법을 터득하며, 실패를 피하고 정복에 성공하기 위해서 그들의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고찰하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인물들을 모방해야 합니다.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 역시 찬양과 영광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그들의 선배들을 모방하려고 했습니다.

“근면함은 운명의 신을 물리칠 수 있다”
현명한 군주라면 항상 이와 같이 행동하며, 평화시에도 결코 나태하지 않고,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부지런히 자신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역경에 처할 때를 대비합니다. 그 결과 운명이 변하더라도 그는 운명에 맞설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속해 있던 기본 세력의 쇠락으로 권력의 밖으로 밀려났다. 《군주론》은 그가 메디치 가문에게 제출한 거대한 포트폴리오처럼 느껴진다. ‘저는 평생 정치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알고 있으며 저를 등용하시면 강력한 군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박식함을 뽐냈지만 계획대로 잘 굴러가진 않았다. 그의 힘겨운 말년을 알고 나니 ‘차라리 권력의 밖으로 밀려났을 때 귀족의 가정교사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아는 것도 많은데, 좋은 선생님이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그만큼 정치를 사랑해서 놓을 수 없었던 거겠지. 뒤에 담긴 부록을 읽은 후 《군주론》이 메디치 가문을 향한 절절한 세레나데로 느껴진다. 그의 정체성은 이 안에 있다.

*위 도서는 까치글방으로부터 제공받아 독서모임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까치 #군주론 #마키아벨리 #도서지원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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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을 먹어라
세라 마리아 그리핀 지음, 아밀(김지현) 옮김 / 허블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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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을 먹어라》| 세라 마리아 그리핀 지음

세라 마리아 그리핀의 《네 사랑을 먹어라》는 표현의 방식은 기괴하지만 결국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아가’라는 식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처음엔 흥미롭고, 또 섬뜩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점점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이 진짜로 들여다보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소원이 나열되어 있다. 작가는 그런 결핍이 얼마나 쉽게 인간을 잠식하는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
그래서 셸은 친구들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질문에는 파티 모자를 쓴 도마뱀 사진을 보냈다. '얘들아, 주말 계획은 뭐야?'라는 질문에는 선글라스를 쓴 아기 염소 사진을 보냈다. 아예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점점 더 정신 나간 밈을 올리는 편이 쉬웠으니까.

셸은 파혼과 실직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다.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셸만 혼자 멈춰버린 기분이다. 그는 대화 대신 밈 사진을 보내고, 자신의 실패를 농담처럼 흘려버린다. 그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처절하다. 사람들은 진짜 속마음 대신 가벼운 반응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깊은 대화보다는 밈과 짧은 안부로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셸의 모습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결핍을 숨긴 채 괜찮은 척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셸 앞에 나타나는 것이 꽃집 주인 네브와 식인 식물 아가다. 특히 아가는 의미심장한 존재다. 사랑하기 때문에 먹고 싶어 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상대를 자신의 내부에 영원히 가두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은 기괴하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사람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잃지 않기 위해 서로를 조금씩 갉아먹기도 하니까. 그래서 아가는 단순한 식인 식물이 아니라 사랑과 집착, 돌봄과 잠식 사이를 넘나드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소설 속 사랑이 따뜻한 구원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세계에 초대받고 싶어 하는 마음, “좋아”라는 말로 자신을 감싸고 싶어 하는 갈망이 관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셸이 꽃집 공동체 안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끼는 순간들조차 묘하게 불안한 이유다. 가장 외로운 순간의 인간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 무엇인지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더 쉽게 끌리기 때문이다.

《네 사랑을 먹어라》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모양은 아름답게 피어난 꽃이라기보다, 이미 썩어가기 시작한 꽃잎에서 풍기는 축축하고 달콤한 냄새에 가깝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맡게 되는 향처럼, 이 소설 역시 묘한 중독성을 남긴다. “사랑과 결핍, 그리고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인간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책의 장르는 호러지만 책을 덮고 나면 아가와 셸, 네브 사이의 감정들이 놀라울 만큼 현실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위 도서는 허블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네사랑 #네사랑을먹어라 #허블 #세라마리아그리핀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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