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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평점 :
🌬️《산곡미풍》| 위화 지음
📖
“문학에 또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소설이 있다니, 천천히 잠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잠에서 깨는 것 같은 소설이 있다니,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
위화 작가님을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 선생님께서 《허삼관 매혈기》를 추천해주셨는데 소설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당시 한 작가가 좋다하면 그대로 파헤치던 나는 도서관에 있던 《인생》, 《형제》를 연달아 읽었다.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한 문화대혁명, 그리고 가깝다면 가까운 나라 중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매혹적이었다.
작가님의 에세이가 출간된다고 해서 올라오는 포스팅을 기다리다가 감사하게도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서평단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를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만나고,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적친밀감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적은 산문에는 딱 그 나이 때의 악의는 하나도 없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도 있고, 이것이 시대와 맞물려 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사건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작가님은 조국의 변화라는 거대한 해류 속에서 그저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파란색 바다를 보고 싶어 끝없이 헤엄치며 나아가는 소년을 상상하며 읽었다.
“밀물 때 바다에 들어가 파도와 사투를 벌였을 테지. 그러나 물과 친하다는 게 무엇이냐. 비유하자면 그것은 방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방언은 고향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다. 아무리 물과 친하더라도 고향에 있는 강이나 바다의 성질을 이해할 뿐이지, 고향을 떠나고 나면 더 이상 물과 친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해가 바다 위로 떨어질 때, 그것이 나와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먼 것 같기도 했다. 해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달이 떴다, 둥그런 달이. 별이 떴다, 여기저기 조금씩”
나는 아직 중국을 가보지 않아서 내가 보고 경험한 것들로만 상상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해가 질 때 수영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예전에 나이트 다이빙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몰과 동시에 바다로 들어가 마음껏 헤엄치고, 다시 물 위로 올라왔을 때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 바다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작가님도 같은 하늘을 보셨을까?
“달빛은 금색이야, 은색이 아니라.”
🫂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아들이 두 살 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내게 물었다.
“아빠, 나는 몇 년 살 수 있어?"
나는 말했다. "100년."
아들은 울음을 터트리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100년밖에 안 된다니, 너무 짧아."
나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 "천 년."
아들은 계속 울었다. "천 년이라니, 너무 짧아."
다시 말을 바꾸었다. "만년."
아들은 울음을 그치고 물었다. "만 년이면 얼마나 길어?"
나는 말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길지."
생과 죽음을 깨달은 아들에게 만 년은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아빠의 다정함이 느껴진다. 작가님의 아들은 이 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 '끝없이 넓다', ‘한없이 아득하다' 같은 말을 몰랐다. 바다를 보고 나는 그저 멍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처음 느낀 건 나중이 아니라 처음 바다를 보았던 그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비록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때가 맞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처음 느낀 순간이 언제였을까, 계속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언젠가 발견한다면 반드시 기록에 남겨야지.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면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수줍어진다. 열린 창문에 들이치는 장대비처럼 나는 작가님의 산문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책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
“조금만 더 있어요.”
몇 번 ‘조금만 더'가 이어진 다음, 아버지는 더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가야했고 나는 울었던 것 같다.
*위 도서는 푸른숲으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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