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통으로 읽는 한국사 1 - 선사 시대부터 통일 신라 알기 쉽게 통으로 읽는 한국사 1
이진경 기획.글, 임익종 그림, 여호규 감수, 오영선 기획 / 시공주니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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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통으로 읽는

한국사

 

1.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

 

 

글 이진경 그림 임익종 감수 여호규

 

 

시공주니어

 




  

 

 

1장. 선사시대

 

선사시대란 문자를 사용하지 않은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말하며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 이후는 역사 시대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구석기 사람들이 살았다는 여러 흔적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평안남도 덕천시와 평양시 여포 구역 대현동 등이 있다.

구석기 사람들이 뗀석기를 사용했다면 신석기 시대에는 간석기를 사용했고,

또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만들기도 했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평등 사회가 시작되었으며 고인돌이 등장했다.

 

 

2장.고조선과 여러나라들

 

우리민족이 처음 세운 나라인 고조선은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으나 중계무역에 불만을 가진 한 무제의 공격으로 우거왕때 멸망하게 되었다.

고조선에 있었다고 알려진 범금 8조 중 전해지는 3조는

첫째,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

둘째,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아야 한다.

( 사유재산이 존재 하였음을 알게 해 준다.)

셋째, 도둑질을 한 자는 데려와 노비로 삼는다

( 신분제 사회였음을 알게 해 준다.)

 

고조선에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부여는 한때 영토가 사방 2000리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으나 494년 고구려에 멸망하였다.

 

주몽이 세운 고구려는 부여와 유사한 풍습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형사취수제와 순장 이었다.

또한 옥저와 도에를 통합하였다.

 

한반도 남쪽에 자리 잡았던 삼한 즉 마한,진한,변한은

마한은 백제에 의해 통합되어지고 진한은 신라에 통합되어지고 철의 생산기지였던 변한은 가야로 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철기가 들어오기 시작 한 것은 기원전 5~4세기 부터 인데

기원전 2세기경에 발달하기 시작했다.

철기가 발달하면서 무기는 더욱 강해지고 철기로 만든 농기구로 인해 농업 또한 크게 발전하게 된다.

 

3장. 고대 역사를 장식한 네 나라

 

주몽이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졸본에 세운 고구려는 주몽의 아들 유리왕에 이르러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고

3대 대무신왕은 부여와 낙랑을 쳐서 영토를 넓혔고 6대 태로왕은 옥저와 동예를 차지하였다.

9대 고국천왕은 왕권을 강화했으며, 진대법을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19대 광개토대왕에 이르러서는

동쪽으로는 두만강 유역,서쪽으로는 요하, 북쪽으로는 옛 부여 땅을 남쪽으로는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또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여 고구려의 강함을 널리 알렸다.

 

20대 장수왕은 420여 년간 고구려의 수도 였던 국내성을 버리고 넓고 기름진 평야를 가진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백제를 공격해 백제의 수도 한성을 무너뜨리고 백제는 고구려를 피해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6세기 말 분열되어 있던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는 문제가 598년 군사 30만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고

양제때 군사 113만명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을지문덕에 의해 실패하였다.

그 뒤 양제는 두 번이나 더 공격했으나 소득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고구려와의 오랜 전쟁 탓에 약해진 수나라는 30여년 만에 멸망하고 당나라가 세워지게 되었다.

당나라 초기에는 평화롭게 지냈으나 645년 당 태종은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태종은 유언으로 '고구려공격을 중지하고 앞으로도 고구려를 정벌하지 말라'고 남겼다고 한다.

 

부여와 고구려에 뿌리를 둔 백제는 8대 고이왕에 이르러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졌고,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하고 마한의 중심 세력이였던 목지국을 멸망시켜 한반도의 중부 지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13대 근초고왕은 369년 무렵 영토를 남해안까지 넓혔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통해 황해도 남부리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하지만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세력이 약해졌고

26대 성왕에 의해 백제는 다시 중흥에 길을 갔으나 나제 동맹의 신라의 배신으로 인해,

한강 유역을 신라에 빼앗기고 성왕은 죽고 백제는 다시 약해 지고 말았다.

 

한반도 동남쪽에서 시작한 신라는

 박.석.김씨가 번갈아 왕이 되었다가 17대 내물왕에 이르러 왕권이 강화되어

김씨가 왕위를 잇게 되었다.

399년 백제.가야.왜가 합하여 나라를 공격하자 내물왕은 고구려에 도움을 청했고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왜를 물리쳤으나 고구려군의 간섭을 받아야했다.

22대 지증왕에 이르러 나라의 이름을 신라로 바꾸고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넓혔다.

23대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율령을 발표한다.

그 후 진흥왕은 나제 동맹으로 한강의 고구려군을 물리쳤고

한강 상류를 신라가 하류를 백제가 나눠 가졌으나 2년 뒤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유역을 독식하게됨으로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되고 한강의 기름진 땅을 차지하게 됨으로 식량과 자원을 차지하게되었다.

 

4장. 삼국을 통일한 신라.고구려를 이은 발해

 

고구려가 수나라,당나라와 싸우고 있던 사이 백제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했고,

이에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실패했고 김춘추는 당에 도움을 청했고

당은 흔쾌히 받아 들였다.

660년 당은 소정방에게 군사 13만명을 ,신라는 김유신에게 군사 5만을 보내 백제를 공격해 멸망시켰고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도 멸망하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자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차지할 욕심을 부렸고

신라는 당나라를 대동강 이남에서 몰아내고

삼국 통일을 이룩하게 되었다.

대동강 이북에서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대조영에 의해 세워졌다.

 

 

 

 

 

 

 

미소 저는 위 도서를 추천하면서 시공주니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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