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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로봇공학, SF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이론 중에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 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물론 그 불쾌감은 로봇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은 수준까지 확 올라가면 다시 호감도가 상승해 골짜기처럼 U자 곡선을 그린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로봇은 로봇인 걸 알 수 있는 수준까지만 호감도가 상승하지 이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두려움을 느낄 것 같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게 사람인 줄 알았는데 머리부터 지퍼를 쭉 내리고 갑자기 플라스틱 몸통이 등장한다면?
JP 덜레이니의 영미소설 "퍼펙트 와이프"에 딱 이 불쾌한 골짜기 이론과 같은 상황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스콧 로보틱스의 창립자 팀 스콧과 그의 인간 아내 애비, 애비가 실종된 후 팀이 만든 코봇(동반자 로봇) 애비, 자폐증 아들 대니 이렇게 네 명인데 바로 문제적 남자 팀이 사랑하는 아내의 실종 이후 아내의 기억을 업로드해 로봇 애비를 만들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책은 화자의 존재를 마지막 반전을 위해 슬쩍 숨겨놓고 주인공 애비를 누군가의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당신"이라는 2인칭을 사용한다. 내가 주로 읽었던 소설의 화자는 1인칭 아니면 3인칭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이렇게 "당신"이라고 로봇 애비를 지칭하면서 정작 정체를 숨긴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불편했다.
나중에 이 당신 운운하던 존재의 정체가 밝혀지자 소름이 쫙 끼쳤기에 이건 작가의 큰 그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정말이지 여기 나오는 남편 팀은 여러가지 의미로 역대급이다.
그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 엄청난 실력에 따르지 못한 인성이 문제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IT업계에서 이런 사람은 그저 소설속 주인공은 아니다.
IT계의 유명인(일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등등)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인성도 퍼펙트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단 그들의 관심사는 일반인과 다르고,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기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팀은 아내가 사라진 후(물론 본인 주장이다, 소설에서 그는 애비를 살해했다고 기소당하기도 했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남) 사랑하는 아내를 못 잊어 그녀와 똑같은 외모의 로봇을 만들고 살아생전 그녀의 기억과 감정을 심어준다.
생식기가 없고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여성 로봇이다. 감정이 있는데 눈물을 흘릴 수 없고 팀이 로봇을 자기 아내라 부르고, 자신을 사랑하도록 입력했지만 정작 생식기는 없다? 이 점 역시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작가가 힌트로 준 게 바로 피그말리온 신화이다.
P. 322
"왜 갈라테이아 증후군이라 불리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어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의 이야기죠. 키프로스의 모든 여자들이 경박하고 천박하다며 거부한 사람이에요. 어느 날 그는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상을 조각했고 그 조각상을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됐어요. 그러자 조각상이 살아나서 그를 사랑했고요. 그는 그녀에게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을 사랑했던 거겠죠."
흠결이 없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아 직접 만들어서 생명을 넣어준 남자 팀. 과연 애비 컬런의 기억을 얻은 로봇 애비는 정말 팀의 완벽한 아내가 될 수 있을까?
소설 <퍼펙트 와이프>의 결말이 궁금해서 이틀째 되던 날 뒷페이지를 먼저 읽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를 못해서 도로 앞으로 와야했다. 여기서 결말 스포를 할 생각이 없는 게 이 소설이 그리 간단치가 않기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뒤의 몇 장을 읽어봐야 이해도 안 갈 뿐더러 화자도 헷갈린다. 중간에는 어딘가 엉성한 부분도 있고 내용도 너무 길다 싶지만 전체적으로는 긴장감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팀은 현재 실종되었지만 어딘가 살아있을 지 모르는 애비를 찾으려 로봇 애비를 만들어 추적하게 했고, 로봇 애비도 자신만의 절박한 이유 때문에 진짜 애비를 찾아나선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애비가 살아있긴 한 건지 만약 죽었다면 살아생전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코봇 애비가 사람 애비로 대접받을 수 있는 건지 의아해진다.
코봇 애비는 방송국에 가서 인터뷰도 하고 무례한 진행자의 질문에 화도 내고 뺨도 때린다. 심지어 눈물이 없이 설계되었는데 나중에는 울기까지 하고 남편 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애교도 부린다. 여기서 읽다가 기절..
자폐증인 아들 대니는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인물이다. 그가 바로 로봇인 애비와 인간인 팀 중 정말 사람다운 존재는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도화선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들을 정상인처럼 보이게 하는데만 치중한다. 무제한 혐오자극이라는 전기충격을 줘서라도 일반인과 똑같이 만들고 싶어하고 그의 그런 기묘한 완벽주의는 가족 모두에게 해악을 끼칠 뿐이다.
사람 같은 로봇 애비, 그녀를 만들었지만 인간미라고는 1도 없는 남편 팀, 도대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호한 인간 애비가 서로를 추적한다.
마지막에 로봇 애비를 보면 바둑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장면이 떠오른다. 로봇 애비는 진짜 사람인 애비의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아들 대니를 엄마와 똑같이 사랑한다.
그녀는 아들 대니를 위해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수"를 둔다.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받아칠 수 없는 수, 하지만 지나고보면 말이 되는 수를 둬서 팀을 물먹이는 명장면이 있다.
결말이 슬프지만 이 장면은 통쾌했다. 허를 찔렀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치 '부디 인간들이여,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우습게 보지 말길.. 언제가는 그들이 정말로 인간의 모든 것을 뛰어넘을 지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구글이 받은 미국 특허 내용이 실려있다. 이건 실제라서 더 징그럽다.
P.502
로봇의 성격을 창조하기 위해 로봇과 사용자의 상호작용을 위한 방법과 기술이 제공된다. 로봇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를 테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나 유명 인사)의 성격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
-미국 특허 No. 8996429 로봇 개성 개발을 위한 방법과 시스템
2015년 구글에 승인
미쳤다.. 이 소설 말미에 이 특허 내용을 실은 건 신의 한 수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이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연명치료 거부신청은 물론 업로드 거부에도 사인해야 할 지 모른다. 나의 사후에 그게 누구의 의사이건 간에 내 기억과 성격을 복제한 로봇을 만든다라니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사랑하는 강아지, 고양이라도 복제해서는 안된다. 어떤 소중한 존재는 대체 불가능하고 되살릴 수 없기 때문에 갖는 가치가 있다. 유일무이한 어떤 존재의 개성, 기억, 인격, 외모 등을 포장만 풀면 등장하는 흔한 복제품으로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왠지 그런 미래가 가까이 온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며 책장을 덮었다.
-출판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