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멈출 수 없다 - 여성의 삶이 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
멜린다 게이츠 지음, 강혜정 옮김 / 부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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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빌 게이츠가 기부를 많이 한다는 것, 특히 개도국 어린이 백신 연구와 투자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기사는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사실 그 자선단체의 핵심 수장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오히려 빌 게이츠는 본래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운영하는데 힘쓰고 있으며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2인자에 가깝고 실제로 세계를 날아다니며 적극적인 자선사업을 펼치는 재단의 실세는 멜린다로 보인다.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오는가도 내게는 재밌는 문제였다. 여전히 서구 사회도 자녀들은 대개 아버지 성을 따른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소위 후진국, 개도국의 엄청난 여성 차별과 착취의 역사를 보면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아무리 선진국 여성들이 직장내 유리천장, 집안일 육아 분담에 불만을 가져도 아프리카, 필리핀, 인도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무지와 폭력, 착취, 억압의 역사를 읽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내가 놀란 것은 그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곱게 자란 멜린다가 어떻게 저런 처참한 여성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서 20년 이상 봉사하며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여성은 진정한 페미니스트이다.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악한 처지의 개도국 여성의 삶을 바꾸려고 각종 단체를 꾸리고 엄청난 재원을 쓰고 그 나라 밑바닥에서부터 사회운동을 하며 끝없이 노력한다.

그냥 돈만 주고 끝인 부자의 기부활동이 아니다. 10살짜리 어린애를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이 있는 곳, 성노동자들이 고객에게 콘돔을 쓰길 요구하면 얻어맞는 곳으로, 이미 아이 6명을 낳고도 피임약이 없어서 또 낳을 위험에 처한 여성들의 동네로 직접 날아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장 끔찍한 이야기는 아프리카 8개 국가 300만명 이상의 여성이 성기를 절단 당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인데 지금은 토스탄이란 단체 활동으로 더 이상 시행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소식이나 또한 인간이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할 수가 있나 충격을 받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관습 혹은 수백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여성들을 세뇌시켜 어릴 때부터 교육에서 배제하고 그들을 남성들을 위한 사물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남자를 위한 성노예, 남자와 가정을 위해 아이를 낳고 평생 무급 가사노동을 하며, 그들 가족을 모시는 그런 존재 말이다. 피임약은 단순히 여성의 성적인 쾌락의 유지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산모와 신생아의 목숨을 구할 뿐 아니라 낙태를 감소시키고 이미 있는 자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 아이 6~8명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더 낳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프리카의 어느 시아버지는 병에 걸린 어린애를 데려가려는 며느리를 밥 차려야 된다고 못가게 한다. 손주가 죽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아이는 하늘이 주는 것이니 하나를 데려가면 하나가 또 생긴다고, 신은 관대하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조금이라도 힘과 권력이 있는 인간은 이렇게 타인에 대해,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해 놀랄 만큼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가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가 힘들다. 아마 아프리카, 인도, 필리핀 등의 고질적인 가난과 악습은 너무 낮은 여성의 지위, 너무 무식한 남성들과 비합리적인 전통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은 서로의 적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남성 조력자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성들을 설득하고 그들을 조력자가 되도록 이끌며, 여성에게 기회를 확장하고 다양성을 촉진하는 것. 즉 지역사회의 여럿과 힘을 합쳐 새로운 문화를 가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엄청 걸리고 때로는 좌절하겠지만 멜린다를 보면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미래가 있기에 멜린다의 도전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여성의 삶이 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 지금도 tv만 틀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도와주자고 나온다. 나는 멜린다처럼 좀 더 전략적인, 지능적인,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단순히 식량이나 의료품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그 근간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랬다면 왜 아프리카 같은 곳은 거의 전세계인의 기부를 100년 이상 받아도 왜 도통 발전이 없단 말인가?

그런 기부 촉진 광고를 볼 때면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도와주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초점은 여성 지위 상승에 맞춰져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을 권리, 낳은 아이에게 백신을 맞힐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를 찾아간다면 먼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 극빈국의 가난과 악습의 대물림도 서서히 개선될 것이다. 멜린다의 활동을 보면 자선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하고 뿌리깊은 사회악과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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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 엄마표 한글 1 : 낱말 읽기 과정 - 신기한 한글 읽기 프로그램, 만 4세 이상 한솔 엄마표 한글 1
한솔수북 편집부 엮음 / 한솔수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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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5살이 되자 슬슬 한글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저는 아직 좀 이르지 않나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있어서 한솔한글 1, 2권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1권을 받고 본문 첫장을 딱 펼쳐보니 빨강망또 소녀가 등장하네요. 할머니 댁에 가야하는데 늑대를 만나서 가지고 있는 선물 바구니 속 음식을 다 털리는 그 동화의 변형판입니다. 글자도 많고 유아에게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다시 맨 앞으로 돌아와 엄마를 위한 가이드를 읽어봅니다. 도대체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어린애가 어떻게 저 어려운 걸 읽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애들은 가나다부터 배우지 않는군요! 그건 초등용 학습법이라고 하네요. 제가 어릴 때는 취학 전에 어머니께 야단 맞아가면서 기역, 니은, 디귿부터 배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더욱 이른 나이에 놀이식으로 학습해서 한글을 떼버리네요? 하하핫.. 세월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유아에게 맞는 학습법이 따로 있다 이거죠. 엄마를 위한 가이드는 무려 김정미 박사라는 분이 쓰셨군요.

올드 고모는 찬찬히 가이드를 더 읽어봅니다. 유아는 문자를 그림으로 인식하므로 자음, 모음을 따로 가르치면 어려워한다네요. 가나다부터 가르치면 너무 어려워서 아이가 한글을 싫어하거나 공부 자체를 멀리하게 된다니 뜨끔하는군요. 요즘 아이는 요즘 방식대로.

그럼 이 책은 어떻게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일까?

아이에게는 강아지가 강.아.지. 로 분리되어 들리지 않고 강아지 단어 자체로 접해야 쉽게 배울 수 있다네요. 단어를 통글자로 이해하면 그 다음부터 음절을 나눠서 개별 글자를 교육하는 게 효과적이랍니다. 이렇게 음절을 분리해서 가르친 후에는 더 작은 단위인 자음, 모음으로 나아갑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기역, 니은부터 배우는 옛날 방식과는 반대로 학습법이군요. 흥미롭습니다. 단어를 통으로 가르치고 그 다음에 음절, 그리고 음소로 나아간다.

저도 '신기한 한글나라'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출판사의 한글 교육 제품은 유아 발달 단계에 맞춰서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꾸몄답니다. 신기한 한글나라를 본 적은 없으나 '한솔 엄마표 한글'도 동일한 학습 이론과 방법을 적용했다니 몰라도 상관없겠네요. 유아의 교육은 공부라기보다 놀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군요.

저는 학습지 세대라 빈칸 채우기에 능한데 이 책에서는 아이가 문제를 푼다고 느끼면 지루해한다네요. 아이와 엄마가 대화하고 놀이하는 자연스러운 학습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솔 한글 1권은 낱말 읽기 과정에 해당합니다. 총 6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전부 낱말을 읽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솔수북 네이버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들어가면 출판사에서 만든 학습 동영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동영상을 아이와 먼저 보고 2차로 책을 보면서 읽어주고 또 맨 뒤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서 붙이면서 3차 학습을 할 수 있네요. 스티커 외에도 오리고 접고 붙이는 만들기, 색연필로 줄긋기도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한글을 익힌다는 공부 개념 외에도 아이의 인지 발달과 감성을 키울 수 있겠네요.

 

아직 우리 조카는 스티커를 자기 손으로 떼기에는 너무 어려서 제가 도와줘야 하지만 워낙에 스티커를 좋아해서 완전히 놀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튜브는 시간을 정해서 조금 보여줄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에 말려도 볼 판이지요.

다음 휴대폰 화면은 제가 실제로 한솔수북 유튜브 사이트에 들어가서 1단계 숲 속의 생일잔치를 틀어본 것입니다. 빨간 모자 소녀가 바구니에 들어있는 것을 늑대에게 보여주는 내용인데 빵이 나오면 저렇게 "빵"이라고 크게 읽어주면서 빵 그림이 나오네요. 몇 번이고 같은 단어를 반복하고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단어라서 어려움 없이 받아들입니다. 당장 단어를 쓸 수는 없겠지만 반복해서 엄마와 둘이 놀다보면 금방 단어를 외울 것 같네요.

 

 

저렇게 "빵"을 여러번 들려주고 동영상도 다 봤으면 맨 뒷페이지에 딸린 스티커를 떼어서 해당하는 빵그림에 붙일 수 있습니다. 페이지 찾기가 다소 복잡하므로 미리 스티커 페이지를 통으로 떼어놓고 보시면서 하시면 편리해요.

 

 

바구니에 스티커를 가득 채워야겠죠. 생각보다 어려워하지 않고 너무 잘 알아맞히네요. 동영상에서 빵, 아이스크림, 오리 등 단어를 불러주면 바로 손으로 가리키네요. 뿌듯합니다.

 

 

그럼 2권을 살펴보겠습니다. 2권(7~12단계)은 한 글자 읽기 과정에 해당합니다. 음절을 인식하고 받침이 없는 기본 글자를 익힙니다. 음절을 인식하고 같은 글자를 찾아보는 훈련을 합니다. 비라는 글자를 배운 후에 음성을 인식하고 나비에도 비가 들어가고 비누에도, 비행기에도 같은 비가 들어가는 것을 찾아보는 거죠. 스티커는 꼭 들어갑니다.

 

전반적으로 일러스트도 너무 귀엽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감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같은 유명 동화를 압축해서 넣어서 줄거리도 재밌습니다. 무서운 내용은 없이 밝고 즐겁게 유아에 딱 맞춘 줄거리네요. 아이는 스티커라면 도대체 질려하질 않기 때문에 저 많은 것도 일단 며칠이면 다 붙일 거 같아요.

이 시기에는 무리하게 학습하기 보다 이런 게 한글이구나 호기심을 갖게 해주고, 부모와 놀면서 한 글자라도 익히면 되겠지 싶습니다. 사실 벌써 영어 단어를 숫자나 색깔 등 수십개 외우고 있어서 기특한 참인데 한솔수북을 통해 한글까지 떼버리면 정말 놀랄 거 같네요. 조카들과 재미있게 한글 공부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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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몸에 밴 상처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심리학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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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명 심리치료사 다미 샤르프의 독특한 심리학 책을 읽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유발된 트라우마 치료에는 기존의 '인식' 위주의 치료보다 '몸'과 '관계' 위주의 치료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몸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흔히들 심리치료라고 하면 내담자와 치료사 단 둘이서 책상을 마주보고 상담을 통해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머리로 어떤 점이 잘못되었나 되집고 반복재생하는 게 떠오를 것이다. 저자는 이런 치료가 트라우마 치료에는 그닥 효과가 없다고 한다. 쇼크 트라우마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내는게 무척 위험하다고 하니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설픈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게 더 안 좋을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린 시절은 주로 유아기를 의미한다. 개인에게 기억에 남지도 않는 그 3살 이하의 영유아기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평범한 부모님을 만나서 다행히 유아기 학대의 기억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가 기억하는 시기보다 훨씬 중요하구나, 아이를 키울 때는 어떻게 양육을 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 시절에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부모로부터 언어적인 혹은 성적인 폭력을 당하면(일반적인 성폭행이 아니라 성적인 장면을 보여주거나 노출되는 것도 무척 해롭다고 한다) 그게 본인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자신의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해리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즉, 머리속으로 자꾸 공상이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현실감이 떨어지고 심해지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되거나 신체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삶의 질을 정하는 첫번째 기준은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잘 의식하는 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는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대감을 유지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한다. 그럼 이런 치료는 자가치료가 가능한 걸까?

저자에 따르면 자가치료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타인의 관심과 사랑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 안 좋은 기억 한가지를 좋은 기억 수백가지로 대체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연습도 있어서 몇 가지 소개한다.

새로운 행동 패턴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배워야 할 일은 아래와 같다.

1.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고 편안함 느끼기.

2. 자기 조절력 높이기

3. 감정을 조절하는 것 배우기.

4. 관계를 맺는 능력 강화하기.

성적 교제를 포함한 친밀한 관계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공통체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관찰자적 자아를 가지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누군가 내 허락없이 손을 잡거나, 영역을 침범하려 들면 "안되요, 싫어요"를 분명히 표현하는 식이다. 남에게 no라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yes라고 말하는 의미와 같다고 한다. 많은 요즘 사회생활 심리서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쉬운 사람,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연기하다보면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정작 본인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모두 자신의 영역을 정해서 부당하고 지나친 모두 침범에 대해 확실한 의사표현을 해야겠다.

아마 이런 조언은 우리나라같이 동양적인 상하관계가 중요시되는 국가에서, 또 여성에게 더욱 필요한 말일 것이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상담하다보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면서 피해자가 오히려 죄책감을 갖고 범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한다. 선진국인 독일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한국은 오죽할까 싶다.

사람으로 다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하자는 논리도 많이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 치료사와 성적인 요소를 배제한 한정적인 기간 내의 사랑관계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을 하는 등 유대관계를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게 스킨십이라고 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 중에는 아주 단순한 터치, 예를 들어 손을 잡는 정도에도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환자들이 많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치료법은 무척 프로페셔널한 심리치료사만 이용해야 할 것 같다. 굳이 심리치료사와의 한정적 사랑을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스스로 오픈해서 사회활동을 통해 인간관계를 늘리는 연습을 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 사랑에는 종류가 많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 실패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도 성인이 되어 연인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사회생활을 통해 친구를 사귀고, 하다못해 지역주민이랑 인사를 하면서도 긍정적인 관계를 쌓을 수 있다.

이 책의 결론은 '머리로 하는 인식보다는 몸을 통한 치료가 중요하다' 이것이다. 자기가 잘 안되는 부분을 알았다면 사람들을 통해 몸으로 부딪히고 연습을 할 것을 권한다. 예를 들어 심리치료 세미나에서 꿀샤워라고 칭찬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한다고 한다. 환자 한 명을 빙 둘러싸고 앉아서 다수의 다른 환자들이 그 사람에 대해 한가지씩 칭찬을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치료냐 싶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칭찬을 들으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 웃프다. 욕이나 부정적인 말에 익숙할 경우 칭찬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하고 심지어 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몸을 분리하며 다른 사람들과 분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복 탄력성을 키워서 안좋은 일에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주고 긍정적인 경험을 했을 때 잊지말고 되새겨야 한다. 부정적인 말 한 마디는 계속 기억하면서 긍정적인 말 수백마디는 잊는 게 사람의 속성이라고 한다. 계속 긍정적인 말과 생각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 있는 일에 자꾸 몰두하면 어려움을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저자의 의미 부여 논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 포로 생활에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 머릿 속으로 꿈꾸는 집을 짓고, 수용소에서 나간 후의 계획을 세우면서 현실의 고통을 잊고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우주에게 소원을 빌어라같은 시크릿류의 논리와는 다르다. 심지어 우주에게 소원을 빌어도 이루어진다면 본인이 저렇게 강한 신념을 가지고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론 내 삶을 가꿔가겠다는 데 안 이루어지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몸을 중시하는 심리 치료서라는 점이 특이해서 읽어봤는데 내용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비록 저자는 영유아기의 트라우마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자라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도 일정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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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장 - 엄마의 길에서 ‘나’를 찾는 독서 제3회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 당선작 2
윤혜린 지음 / 사과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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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가 된 저자가 육아를 하며 느낀 고난(단어가 좀 이상할지 모르나 저자의 고생과 푸념을 듣자니 이건 육아가 아니라 고난으로 느껴졌다), 결혼하면서 바뀐 삶의 급격한 변화, 그 와중에도 다양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느낀 솔직한 감상을 엮은 에세이이다. 솔직히 나는 육아 경험이 없어서 간접적으로 조카를 돌보며 느낀 게 다라 '이 정도로 힘이 드는 걸까, 게다가 전업주부잖아?'라는 생각을 완전히 지우기는 힘들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워킹맘으로 훨씬 더 정신없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자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듣고 백번 공감했다. "요즘 애 키우는 게 옛날이랑 달라. 너희 키울 때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바로 우리 어머니가 손주들을 돌보며 며느리 몰래 내게 하신 말씀이다. "요즘 애들이 훨씬 극성맞아, 너희들은 안 그랬는데" 라면서 혀를 내두르셨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 역시 저자와 같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바로 아이를 같이 돌볼 인력의 태부족. 예전에는 같이 자라는 형제가 많았으니 벌써 훌쩍 큰 첫째나 둘째가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을 것이고, 주변의 이웃과도 더 가까웠을 테고 친척도 많아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산다면 역시 힘을 보태셨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 아니더라도 아마 아이만 돌보는데 전력을 투구하기에는 생계가 너무 버거워서 엄마들이 그만큼 신경을 못 쓰는 새에 애들이 다 커버렸을 수도 있다. 지금은 어찌보면 풍족하고 어찌보면 궁핍한 세대가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장난감에 유튜브, 넘치는 책 등 갖고 놀 거리는 많아졌는데 내가 관찰한 바로는 애들이 이걸 혼자 가지고 놀지는 않았다. 그들은 늘 그것을 같이 봐줄 어른이 필요했고 대개는 엄마다. 밤낮없이 엄마만 찾으니 육아가 고통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저자는 잘 극복한 것 같다. 가장 힘들다는 초반 5년을 지났고 아이 둘을 이미 낳았으니 잘은 몰라도 또 다시 출산의 고통을 겪을 것 같지 않다. 이제는 엄마로서 경험도 쌓이고 애들이 그 지겨운 기저귀도 떼었으니 더 이상 밥 먹다가 화장실 호출을 안 당해도 될 터이다.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읽었다.

사람들은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를 많이 한다. 책도 히트쳤고 영화 역시 그렇다. 나는 둘 다 보지 않았다. 그닥 끌리는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 '엄마의 책장'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소환했다. 그 중 '82년생 김지영'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인용한 한 단락은 읽었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교육받고 사회생활 하고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유독 육아는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자의 몫이라는 말 말이다. 공유처럼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는 착한 남편이 있어도 육아는 힘들기만 하다는 그녀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남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자에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음식물 쓰레기는 버려줘도 살림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것처럼, 맞벌이를 해도 퇴근하면 또 집안일을 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퇴근하면 쉬려고만 한다. 그렇다면 여자가 살 길은 하나다. 남자처럼 풀타임 사회생활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학 나와도 평생 전업주부로 살던가, 배운 게 아까우면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도 차선으로 선택해서 좀 적게 일하고 적게 벌던가.

너무 차가운 생각일까? 아마 어떤 선택을 해도 둘 다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저자 역시 대학시절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원까지 나온 여자다. 취업에 실패하고 갑자기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또한 그렇게 정신없이 엄마로서의 삶을 살면서 본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감독님이 망해서 좋아요, 감독님을 보고 망해도 괜찮구나 안심이 됐어요"라는 유라의 대사는 나도 참 좋아한다. 망해도 괜찮다. 저자처럼 각종 작가 공모전에 떨어져도 괜찮고 대학 나오고도 취직 못해도 괜찮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저자는 이제 초등학교와 도서관에서 글쓰기 관련 수업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경기 히든 작가 공모전이란 것에 당선되어서 책도 냈다.

 

 

삶은 한 번의 성취로 좋아지거나 나빠질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저자의 말에 가장 공감한다. 우리는 모두 꾸준히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 또 응모하면 된다. 실망이야 되겠지만 이겨내야 한다. 저자가 읽었다는 다양한 작품들 중에는 내가 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지만 인용이 많아서 조금 산만하기도 했다. 역시 가장 큰 공감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나보다. 성공한 타작가들의 글보다 저자 아버지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지극히 평범하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던 아버지. 디즈니 만화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끝이 아니라 그 "오래오래"로 축약된, 실은 구질구질하고 구구절절한 삶의 밑낯에 주목한 저자의 솔직한 시선이 아름답다. 이게 에세이의 맛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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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괄식 영어 스피킹 훈련
박광희 지음 / 사람in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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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올해 최고 목표는 영어 말하기입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 포커스도 스피킹에 맞춰서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람in에서 나온 두괄식 영어 스피킹 훈련이라는 책을 리뷰하려고 해요. 이 책은 뜬금없이 "두괄식"을 들고 나왔네요. 왜 갑자기 영어책에 두괄식일까?

 

 

 

이유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주제를 먼저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야 안다고 하죠? 결론부터 말하면 두괄식, 부연설명 후에 결론이 뒤에 오면 미괄식입니다. 주어, 동사가 멀리 떨어져있는 한국어 어순과 달리 영어는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가 옵니다. 예외가 있을 지언정 대개는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죠. 당연히 '내가 뭐뭐 했다'가 바로 오다보니 미괄식보다 훨씬 직설적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그런 영어의 특성을 무시하고 장황하게 말하다 마지막까지 들어야 결론을 알 수 있는 한국식 어법으로 말하면 미국인들이 들을 때에는 중구난방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상당히 점수를 깎아먹는다고 하네요. 영어는 미국식으로 구사해야 하겠죠? 그런데 이게 연습을 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습니다.

일단 사고방식 자체가 한국식이라 영어 어순으로 말을 바꿨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체계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한국어 문장에서 영어 문장으로 바뀌는 어순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나는 생각한다/~라고" 이런 식으로 문장을 풀어서 보여줍니다.

또 결론부터 말하는 두괄식 스피킹에 맞게 주제가 있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문장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5가지 섹션으로 나눠서 구성되어 있구요. 뒤로 갈수록 조금씩 어려워지는 거 같네요.

 

 

 

 

mp3파일을 제공하고 있어서 출판사 사이트에 가서 한꺼번에 받아서 들으면 편리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제공된대로 원어민이 읽어주는 본문 느리게 1번, 중간 속도1번, 빠르게 1번 총 3번을 들은 후 다음 파일로 넘어갔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느리게와 빠르게는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른 경향이 있어서 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 과감히 제끼고 일반적인 속도인 2번째 파일만 추려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속도감 있게 진도를 나갈 수 있고 필요하면 반복해서 들으니 훨씬 좋네요. 그건 학습자가 알아서 정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받아쓰기를 하지 않고 한국어 해석을 보면서 영어문장을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영어 문장을 보고 다시 들으면서 확인했구요. 받아쓰기는 그 다음에 했습니다. 맨 앞장에 나온 원어민식 어구 배치 훈련을 하고 다음장부터 그런 연습을 하면 문장이 훨씬 귀에 쏙쏙 들어와서 신기했네요.

마지막으로 책 하단에 나온 스피킹 코치의 조언은 한국인이 잘 모르거나 틀리기 쉬운 숙어나 관용구, 문법에 대해 깨알 설명을 해줘서 재미삼아 읽었습니다. 아직 1독이라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꼭 두괄식, 미괄식에 연연한다기보다 미국식 어순을 읽힌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가가면 좋을 거 같네요. 영어 스피킹은 결국 얼마나 많은 문장을 외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냐가 관건 같습니다. 그냥 눈으로 읽어서는 툭 쳤을 때 말이 나오질 않아요. 이 책에서도 복습 코너를 통해서 한국어 해석만 보고 앞서 학습한 문장이 줄줄 나오는지 자가 체크해보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장이 아주 쉬운 수준이 아니라서 최소 10번 이상은 듣고 따라 말해봐야 암기 흉내라도 낼 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갈 길이 멀지만 매일 한 단락씩 외워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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