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몸에 밴 상처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심리학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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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명 심리치료사 다미 샤르프의 독특한 심리학 책을 읽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유발된 트라우마 치료에는 기존의 '인식' 위주의 치료보다 '몸'과 '관계' 위주의 치료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몸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흔히들 심리치료라고 하면 내담자와 치료사 단 둘이서 책상을 마주보고 상담을 통해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머리로 어떤 점이 잘못되었나 되집고 반복재생하는 게 떠오를 것이다. 저자는 이런 치료가 트라우마 치료에는 그닥 효과가 없다고 한다. 쇼크 트라우마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내는게 무척 위험하다고 하니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설픈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게 더 안 좋을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린 시절은 주로 유아기를 의미한다. 개인에게 기억에 남지도 않는 그 3살 이하의 영유아기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평범한 부모님을 만나서 다행히 유아기 학대의 기억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가 기억하는 시기보다 훨씬 중요하구나, 아이를 키울 때는 어떻게 양육을 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 시절에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부모로부터 언어적인 혹은 성적인 폭력을 당하면(일반적인 성폭행이 아니라 성적인 장면을 보여주거나 노출되는 것도 무척 해롭다고 한다) 그게 본인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자신의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해리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즉, 머리속으로 자꾸 공상이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현실감이 떨어지고 심해지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되거나 신체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삶의 질을 정하는 첫번째 기준은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잘 의식하는 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는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대감을 유지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한다. 그럼 이런 치료는 자가치료가 가능한 걸까?

저자에 따르면 자가치료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타인의 관심과 사랑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 안 좋은 기억 한가지를 좋은 기억 수백가지로 대체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연습도 있어서 몇 가지 소개한다.

새로운 행동 패턴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배워야 할 일은 아래와 같다.

1.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고 편안함 느끼기.

2. 자기 조절력 높이기

3. 감정을 조절하는 것 배우기.

4. 관계를 맺는 능력 강화하기.

성적 교제를 포함한 친밀한 관계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공통체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관찰자적 자아를 가지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누군가 내 허락없이 손을 잡거나, 영역을 침범하려 들면 "안되요, 싫어요"를 분명히 표현하는 식이다. 남에게 no라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yes라고 말하는 의미와 같다고 한다. 많은 요즘 사회생활 심리서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쉬운 사람,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연기하다보면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정작 본인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모두 자신의 영역을 정해서 부당하고 지나친 모두 침범에 대해 확실한 의사표현을 해야겠다.

아마 이런 조언은 우리나라같이 동양적인 상하관계가 중요시되는 국가에서, 또 여성에게 더욱 필요한 말일 것이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상담하다보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면서 피해자가 오히려 죄책감을 갖고 범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한다. 선진국인 독일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한국은 오죽할까 싶다.

사람으로 다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하자는 논리도 많이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 치료사와 성적인 요소를 배제한 한정적인 기간 내의 사랑관계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을 하는 등 유대관계를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게 스킨십이라고 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 중에는 아주 단순한 터치, 예를 들어 손을 잡는 정도에도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환자들이 많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치료법은 무척 프로페셔널한 심리치료사만 이용해야 할 것 같다. 굳이 심리치료사와의 한정적 사랑을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스스로 오픈해서 사회활동을 통해 인간관계를 늘리는 연습을 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 사랑에는 종류가 많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 실패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도 성인이 되어 연인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사회생활을 통해 친구를 사귀고, 하다못해 지역주민이랑 인사를 하면서도 긍정적인 관계를 쌓을 수 있다.

이 책의 결론은 '머리로 하는 인식보다는 몸을 통한 치료가 중요하다' 이것이다. 자기가 잘 안되는 부분을 알았다면 사람들을 통해 몸으로 부딪히고 연습을 할 것을 권한다. 예를 들어 심리치료 세미나에서 꿀샤워라고 칭찬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한다고 한다. 환자 한 명을 빙 둘러싸고 앉아서 다수의 다른 환자들이 그 사람에 대해 한가지씩 칭찬을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치료냐 싶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칭찬을 들으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 웃프다. 욕이나 부정적인 말에 익숙할 경우 칭찬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하고 심지어 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몸을 분리하며 다른 사람들과 분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복 탄력성을 키워서 안좋은 일에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주고 긍정적인 경험을 했을 때 잊지말고 되새겨야 한다. 부정적인 말 한 마디는 계속 기억하면서 긍정적인 말 수백마디는 잊는 게 사람의 속성이라고 한다. 계속 긍정적인 말과 생각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 있는 일에 자꾸 몰두하면 어려움을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저자의 의미 부여 논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 포로 생활에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 머릿 속으로 꿈꾸는 집을 짓고, 수용소에서 나간 후의 계획을 세우면서 현실의 고통을 잊고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우주에게 소원을 빌어라같은 시크릿류의 논리와는 다르다. 심지어 우주에게 소원을 빌어도 이루어진다면 본인이 저렇게 강한 신념을 가지고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론 내 삶을 가꿔가겠다는 데 안 이루어지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몸을 중시하는 심리 치료서라는 점이 특이해서 읽어봤는데 내용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비록 저자는 영유아기의 트라우마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자라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도 일정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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