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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가 알려주는 정신과 사용법 - 정신과 문을 여는 게 두려운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나해인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12월
평점 :
중학생 때였어요.
어릴 적부터 알고지냈던 친구가 한동안 보이지 않더라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입원을 했었다고. 그 말을 들은 후부터 그 친구를 대하는 것이 묘하게 조심스러워졌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뭔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조금씩 친숙해졌지만, 여전히 대상을 '나'로 한정하면 문턱이 높아지는 곳이 있죠.
정신과.
인식이 그러하다보니 이 곳에 내방하기까지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환자가 방문을 했을 때는 이미 병을 키워서 오는 경우가 흔하다고.
찾아온 이후에도 유난히 원인을 찾아내는데 집착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있어서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정신질환의 원인은 뭘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른다'고 합니다. 다른 질환처럼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심리/인지적 요인이 뒤섞여서 일어나는 것이니 한가지만 꼭 찝어낼 수는 없는 거겠죠.
그럼 이 책을 읽어서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
왜 없겠어요. 당신이 정신질환과 정신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의 대부분을 이 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록 유출, 보험료 인상, 약물 의존증? 이게 가장 걱정되던 부분 아니던가요? 명쾌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울, 불안, 번아웃, 성인ADHD, 강박, 수면 문제, 중독, 트라우마. 흔히 생각되는 질환의 종류를 자가진단할 수 있는 문항들이 실려있구요.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풀었습니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성인 ADHD'와 번아웃, 그리고 트라우마 부분.
고기능ADHD의 경우 높은 지능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중 덕분에 어릴 적에는 증상이 있어도 인지하지 못했다가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인지하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번아웃의 경우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구요.
트라우마의 경우 예전에는 재난 등 대문자 T만 트라우마로 인정했는데, 이후에는 습관적으로 쌓여서 형성되는 소문자 t 트라우마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았어요.
수면 문제로 한동안 고생했던 적이 있어서 이게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잘 자는 편이라서 금새 좋아지긴 했는데, 그 기간이 오래되었다면 신경가소성 때문에 꽤 힘들었을 수도 있겠더라구요.
책의 후반부는 나에게 맞는 의사를 찾는 법과 첫 진료시에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마지막 장은 치료를 하면서 유의해야 할 부분을 언급하는 것으로 맺습니다.
책 표지처럼 안정감을 주는 책이었어요. 혹시 구미가 당긴다면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해보면 될 것 같아요. 삶의 균형을 찾는 한해가 되길 원합니다.
(아. 그러자면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
덧) 몇해 전. 우연히 마주친 어릴적 그 친구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