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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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를 읽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괴물도 영웅담도 아니었다. 한 사람이 끝없이 헤매면서도 돌아갈 곳을 잊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뒷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단순한 고향이 아니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왕의 자리, 오래전의 이름이 있는 곳. 무엇보다 그가 다시 오뒷세우스가 될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에게 돌아가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우리는 흔히 그의 10년 방랑을 포세이돈의 분노 탓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오뒷세우스를 가장 오래 붙잡아둔 것은 적대적인 괴물이 아니라 달콤한 것들이었다. 로토스를 먹으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잊는다. 키르케의 섬에서는 1년을, 칼륍소의 섬에서는 무려 7년을 머문다. 괴물은 싸우면 되고 폭풍은 견디면 된다.
그러나 편안함은 다르다. 굳이 떠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조금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우리를 삶의 방향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불행보다 이런 작은 목소리들이다. 아침 알람을 끄고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 오늘 하루쯤은 괜찮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순간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생각보다 먼 곳까지 떠밀려와 있다.

오뒷세우스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다.
중요한 순간에 잠이 들고, 부하를 통제하지 못하며, 수많은 선택 앞에서 흔들린다. 12척의 배로 떠났지만 결국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은 그 한 명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때문에 그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위대함은 길을 잃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수없이 길을 잃고도 다시 방향을 잡았다는 데 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칼륍소의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이다. 그녀와 남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뒷세우스는 영원한 낙원 대신 언젠가 죽어야 하는 인간의 삶을 선택한다.
삶은 유한하기에 소중하다. 끝이 있기에 오늘이 특별하고, 돌아갈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귀향을 서두른다. ‘가리는 자’라는 뜻의 칼륍소의 섬에서, 오뒷세우스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잊혀간다.
그래서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이름을, 잊혀졌던 자신을 되찾는 일이다.

김헌 교수의 번역은 이 세계를 지나치게 매끈하게 다듬지 않는다.
마음이라 옮길 법한 표현을 ‘횡격막’으로, 분노를 ‘담즙이 치솟는다’는 식으로 살려낸다. 낯설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3천 년 전 사람의 몸과 감정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들은 몸 전체로 생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존재였다.

영화가 모험을 압도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면, 원작은 그 모험의 의미를 묻게 한다.
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자꾸 머물렀는지, 왜 인간은 불멸보다 유한한 삶을 선택하는지.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처음 품었던 꿈일 수도, 오래 잊고 지낸 사람일 수도, 어느 순간 놓쳐버린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다시 묻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조금씩 오뒷세우스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돌아가야 할 곳이 남아 있다. 귀향은 장소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끝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다.

덧) 인생에서 한번쯤 고전을 읽어야 한다. 마침 영화 개봉과 맞물려 열풍이 일어나는 중이다. 슬그머니 동참해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왕이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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