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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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이 닥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떠나지만, 일흔두 살의 셴 할아버지는 남습니다. 늙은 몸으로 피난길을 따라가 봐야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어차피 죽는다면 살아온 땅에서 죽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집 앞에 옥수수 싹 하나가 돋아납니다. 마을에 남은 것은 노인과 눈먼 개,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옥수수 한 그루뿐입니다.

셴 할아버지 곁에는 비를 기원하는 제물로 묶여 있다가 눈을 잃은 개가 있습니다.
죽어가던 개를 풀어준 노인은, 모두가 떠난 뒤 그 선택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둘 다 늙고 쇠약하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이 작품의 따뜻함은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구하는 데서가 아니라, 약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가까스로 살아가는 데서 나옵니다.

옥수수를 살리려는 노인의 사투는 처절합니다.
씨앗을 찾아 헤매고, 늑대와 대치하고, 쥐 떼가 밭을 뒤덮자 잎을 하나하나 닦아냅니다. 처음엔 지나친 고집처럼 보이지만, 읽을수록 옥수수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유일한 생명, 자신이 아직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던 노인에게 옥수수는 삶의 이유가 됩니다.

셴 할아버지는 옥수수로 산맥을 되살리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공덕비를 세워주는 미래를 상상합니다. 허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이길 바랍니다. 몸이 늙어 예전처럼 일할 수 없을 때, 자신이 짐이 되었다는 감각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가 옥수수를 지키는 일은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와 세상에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싸움입니다.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노인 모두 외부의 보상을 얻지 못합니다. 물고기는 상어에게 뜯기고, 공덕비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싸움에는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존엄이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선택한 일을 끝까지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씁쓸한 장면은 동전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옥수수의 거름이 될 존재를 정하려 동전을 던지지만, 훗날 발견된 동전은 양면이 모두 같은 글자입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거름이 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연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 동전을 그냥 땅에 던져버립니다. 한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담긴 물건이 타인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폐품이 되는 순간—우리의 삶도 어쩌면 그렇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옥수수에는 서른일곱 개의 알이 맺혔지만, 제대로 살아남은 것은 일곱 알뿐입니다. 그 일곱 알에서 다시 일곱 그루가 자라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바둑으로 치면 겨우 반집 차이의 승리, 그 작은 차이가 생명과 죽음을 가릅니다.

셴 할아버지는 죽음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연약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옥수수 뿌리가 노인의 몸을 관통한 모습은 잔혹하면서도 숭고합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연월일'이라는 제목은 해와 달과 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단위를 나란히 놓은 말입니다. 셴 할아버지의 싸움은 물을 긷고 쥐 잡고 흙 파는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축적되고, 잊히는 삶일지라도 그가 살아낸 하루하루는 옥수수 일곱 알 속에 남아 다음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가 떠올랐어요. 모자무싸.
나이 들었을 때뿐 아니라 실패했을 때, 초라해졌을 때도 우리는 말합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셴 할아버지에게 옥수수는 그 말을 대신해 주는 생명이었습니다. 공덕비는 세워지지 않았고 동전도 버려졌지만, 그가 지켜낸 일곱 알은 다시 싹을 틔웠습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살아낸 시간은 그렇게 다른 생명 속에 남습니다.

옌롄커의 <연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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