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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탐스러움 ㅣ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평점 :
#북다방1기 #이웃집의탐스러움 #정기현 #북다 #도서협찬
낯섬과 다정함은 공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
읽고 나면 이 문장이 오래도록 남는다. 뒷표지에도 프린트된 문장.
이웃. 가까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도 서로의 이름조차 모를 때가 많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쳐도 짧은 인사 뒤에는 곧바로 침묵이 내려앉는다. 소설은 바로 그 침묵의 순간에서 시작한다.
소설 속 '정기현'의 본가에는 독특한 가풍이 있었다. 손님을 초대해 융숭하게 대접하고 그 대가로 이야기를 듣는 일. 풍요롭고 교양 있어 보이는 가풍이지만, 기현은 사실상 "이야기 지옥"에 가까웠음을 깨닫는다. 부모는 이야기를 사랑했지만, 결국 타인의 삶을 수집하고 소비했을 뿐이다.
기현은 그 집을 떠나 작고 낯선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옆집 부부 기은과 준영을 만난다. 처음에는 705호와 706호의 관계였다가, 어느새 거의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고, 급기야 마을 축제 연극 무대에 함께 서게 된다.
이 소설의 매력은 관계의 미세한 변화에 있다. 소제목들은 일상 속에서 조금씩 방향이 틀어지는 순간들을 가리킨다. 거칠게 요약하면 '삼십대 여성이 독립 후 이웃과 가까워지고 싶어 쓴 긴 편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이야기는 하나의 미로처럼 흐른다. 사건들은 때때로 우연히, 뜬금없이, 엉겁결에 벌어진다. 삶과 닮아있다.
기현은 자신의 부모처럼 남의 이야기를 탐욕스럽게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은 관계를 이전과 같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는 일임을 안다. 말해버린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정하면서도 무섭다. 관계를 열어젖히는 문이면서, 상대가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기현은 옆집 부부와 있을 때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셋 중 둘은 부부라는 범주에 속해 있고, 기현은 셋 중 하나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 관계 안에서 포지션을 계속 가늠하는 이 마음을, 소설은 우습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포착한다.
기현은 생전 처음 취업해 돈을 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월급을 받아 먹는 데 써버리는 경험 앞에서 "이게 바로 삶이라는 것이로구나"라고 느낀다. 삶은 대단한 의미보다 훨씬 작고 구체적인 리듬으로 다가온다. 그 수수한 반복 속에서 기현은 이전의 자신과 다른 형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기현은 기은과 준영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건네고 싶어 한다. 지금보다 "복잡하고 자세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다.
좋은 관계란 친한 사이, 가까운 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조금 더 복잡하게 이해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 기현이 부모의 세계에서 벗어나 도달한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문을 두드려도 될까. 같이 밥을 먹자고 해도 될까. 조금 더 알고 싶다고 말해도 될까.
다시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난 후 엘리베이터에서의 짧은 인사 후 어색하게 내려앉는 침묵, 그 시간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낯선 채로도 다정할 수 있다고, 이웃 그다음도 가능하다고.
덧) 엽서에 적힌 글이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을 쓰고 바로 옆집에 사는 분과 이웃이라고 할 만한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