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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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라는 평을 자주 접했습니다. 사실은 사놓은지 오래였는데,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읽게 되었어요.
여운이 남는 책입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떠올려보면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없었던, 개인적으로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전작 <맡겨진 소녀>를 읽을 때도 그랬거든요. 그래도 전작보다는 주인공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선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선의'는 무엇일까요? 받아 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대가 없이 받은 '선의'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있지요. 그리고 언젠가는 베풀고 싶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제목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지만 주인공의 눈에 비친 장면과 기억들은 사소한 것들로 치부되지 않습니다.

주인공 펄롱은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미시즈 윌슨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펄롱은 어머니 역시 잃었지만 장성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립니다. 아내와 다섯 딸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 펄롱은 일을 마치면 몸을 뉘일 공간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펄롱의 집은 분주합니다.

다섯 아이들은 저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느라 바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펄롱은 과거를 떠올립니다. 자신이 받았던 선물을. 당시 친구들이 흔하게 받았던 지그소 퍼즐조차 받지 못했던 날들을.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면서 펄롱은 아버지의 부재를 깨달았지요. 그는 그때 미시즈 윌슨으로부터 낡은 책을 받았었어요. 낡고 헤진 책을 보면서 실망을 했지만 그는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그 책을 다 읽었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 본 덕분에 어휘력이 늘었죠. 같이 살던 네드 삼촌으로부터 받은 작은 난로 덕분에 겨울이 따스했던 기억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을 납품하러 갔다가 창고 안에 갇힌 소녀를 발견합니다. 떨고 있던 아이는 펄롱에게 강가로 데려가달라고 애원합니다. 죽게 해달라고. 그것도 못 들어주냐고. 아이는 펄롱을 타박합니다. 수녀원의 문을 두드립니다. 수녀가 나오고 마치 아이를 찾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합니다. 펄롱은 잠시 고민합니다. 이 반응을 믿어야 할지 말지를. 수녀원장이 그를 부릅니다. 차를 한 잔 하고 가라면서 붙들었었요.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봉투를 건냅니다.

수녀원장이 있던 곳을 나오면서 펄롱은 아이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아이는 처음엔 '앤다'라고 불린다고 답했지만, 펄롱이 그건 남자 이름 아니냐고 반문하자, '세라'라는 이름을 알려줍니다. 이제 알아버렸어요. 펄롱은 어떻게든 이 아이와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세라'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말합니다. 원래 살고 있던 곳은 이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요. 펄롱은 생각합니다. 미시즈 윌슨이 세라의 부모처럼 자신을 대했다면 어땠을까?라고. 펄롱의 아내 아일린은 펄롱의 말에 반응합니다. 미시즈 윌슨은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창문 수리를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라는 것이었겠지요. 다섯 명이나 되는 딸을 생각하라는 것이었겠지요. 아일린은 현실을 말합니다.

펄롱의 지인은 말합니다. 수녀원과 척을 지지 말라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나온 소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아내 아일린은 말합니다. 그곳처럼 대금을 밀리지 않고 주는 거래처가 또 있느냐고. 펄롱이 아일린에게 건내 준 봉투에는 돈과 급히 쓴 듯한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집을 나온 펄롱은 구두를 사러 갑니다. '세라'에게 맞을 듯한 구두. 맨발이 걸렸겠지요. 수녀원으로 찾아간 그는 '세라'를 데리고 집으로 향합니다. 몸을 감싸는 기운을 느끼면서요.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의 행동이 가져 올 후폭풍을.

펄롱의 입과 행동을 빌어 작가는 묻습니다. 나와 내 가족만 잘 건사하면 되는 것이냐고. 홀로 창고에 갇혀 있는 소녀를 보고도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 이게 정말 사소한 문제인 것이 맞느냐고.

이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라고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겠지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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