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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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려 있는 작가 겸 감독 마민지의 가족 사진.

어린 시절과 가세가 기울어진 이후의 삶의 괴리감.


아파트에 살다가 집 평수를 줄이고 점차 단지 외곽으로 밀려나고

급기야는 길 건너 상가에 살게 되던 날.

어머니는 짐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 이사 온 집은 잠시 머물기만 할 거라고.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이었다.


다행인 것은 성인이 되기 전에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일까?

하루 아침에 바뀐 신세.

그의 대학시절 별명은 '알바몬'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공격적인 듯한 말투와 표정.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을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애어른인 듯한 작가의 얼굴과 아직도 소녀 같은 목소리와 붙임성 좋은 엄마가 대조되는 듯.


방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는 아버지.

그는 조만간 목돈이 생길 것 같다고 말한다.

근거가 있을까?


부동산.

젊었을 때 그들 부부가 돈을 벌었던 경험.

그 경험을 잊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를 찾아 그들 부부의 늦둥이 딸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부모님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제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진 속 부모님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이 낯설다.

그들은 사업파트너였다.

땅을 사고 집을 지어서 파는 집장사. 엄마는 설계를 곧잘 했다고 한다.

집을 지으면 팔리던 시절. 얼마를 벌었는지 세지도 않았던 호시절.

점차 규모를 키워가던 사업은 암초를 만난다.

24억 토지를 12억 현금, 나머지 대출을 받아 투자한 땅이 규제에 묶여버렸다.

설상가상으로 IMF가 터진다. 집을 팔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

급기야 집안의 전기와 수도가 끊긴다.


사업상 정보를 얻기 위해 골프장에 다니던 아빠. 해외를 곧잘 나가기도 했던 그 사람은 이제 골방 늙은이가 되었다.

그들의 딸은 독립을 했고 집을 자주 가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겨우 찾은 집의 천장에서 물이 새도 괜찮았다.

그러던 중 5년만에 낯익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고 전화를 건다.

없는 전화번호입니다.

그 누군가는 아빠였다.


책의 대부분은 엄마와의 추억을 담고 있다. 엄마의 생활력. 남 몰래 숨겨왔던 부동산.

엄마는 작가 명의로 땅을 구입해 뒀다.

아빠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자 엄마가 일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엄마가 집에만 있었던 기간은 4년 남짓이었다.

기획부동산의 텔레마케터. 부동산과의 끈질긴 인연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작가가 연출한 <버블 패밀리>를 보았다.

책을 읽어 상당부분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다큐멘터리를 찍던 2017년과 지금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엄마의 부재. 글을 읽고 영상을 봤을 뿐인 나도 상실감이 큰데 저자는 오죽 할까 싶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을 보니 새삼 그가 겪어낸 세월이 짐작된다.


부모님의 지난 세월과 그들의 찬란했던 시절. 그리고 그들의 딸에게도 찾아올 황금기를 기대해보며.

그 시절을 살아냈던 어른들과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려 애썼던 이제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거나 홀로 견디고 있는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빈다.


덧) 1997년. 그해 어느날 새벽 큰아버지의 부고를 들었고, 상갓집에서 대통령선거 개표방송을 봤다. 아버지가 20대부터 다니던 아시아자동차는 1999년에 기아자동차에 흡수되었다. 2001년 어머니는 본인이 하시던 의상실을 정리하고 나산클레프에 입점해서 옷을 판매하다 모기업이 망하자 빚을 지고 그만 두게 되었다. 군대에 있던 나는 모르던 사실이었다. 2007년 아버지가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한다. 고시공부를 하던 나는 이때도 몰랐던 사실이다. 어머니는 바느질 기술을 살려 자동차 시트 커버 만드는 공장을 전전하며 일을 놓지 않았다. 후에 만학도가 되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방송통신대 4학년 재학중이시다.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한 후 지금은 주민센터에서 하는 영어수업을 들으신다.

아들인 나는 보고 자랐다. 사글세 방에서 네식구가 살다가 점차 집을 늘려가며 집을 마련하는 과정을.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 어머니의 삶은 빚을 지고, 그 빚을 갚아나가는 삶이었다. 다 그렇게 살았다고 하신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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