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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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서점 주인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의 일부를 낭독하자 그레고리우스가 말했다.

"사겠습니다."

그걸로 결정되었다. 책 안에 적힌 주소를 따라 그는 리스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날. 다리 중간 난간에 팔꿈치를 대고 있던 여자가 난간 위로 팔을 뻗치는 그 순간에 그레고리우스는 '뛰어내리겠구나'라고 생각한 나머지 몸이 먼저 움직였다. 여자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가방이 열리고 아스팔트에 쏟아진 책들을 수습하는 그의 이마에 여자가 사인펜을 꺼내 숫자를 몇 개 적었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그래서 였을까? "조금만 함께 걸어도 될까요?"라고 묻는 여자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그가 수업을 하던 중 그녀는 사라진다.


그는 학생들로부터 '문두스'(세계, 우주, 하늘 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라 불리웠다. 교장은 그를 소개할 때마다 "진짜 학자를 보고 싶다면, 바로 여기 있는 이분입니다."라고 소개한다. 즉흥적인 결정이라니, 그것도 스위스 베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다니.


언어의 연금술사의 저자는 아마데우 프라두. 그의 여동생을 만났다. 그녀는 그레고리우스로부터 책을 받아들고 회상에 잠긴다. 100권 중 6권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94권의 행방이 궁금했는데 당신이 가져왔구나. 오빠를 떠올린다.


아마데우는 의사였다. 묘비를 찾는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생전의 그는 저항운동가였는가. 프라두를 아는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그의 생전과 동지들의 정보를 얻는 그레고리우스.


깨진 안경 대신 새안경을 맞추면서 그는 새삼 놀라게 된다. 안경 하나 바뀐 것 뿐인데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하다. 변화하는 그의 심경을 드러내주는 장치인 것일까? 프라두의 생애 추적은 계속된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동료 주앙 에사의 거처를 찾게 된다. 한때 슈베르트를 연주하던 주앙 에사의 손은 악명높던 비밀경찰 멘드스로부터 고문을 받아 망가졌다. 그리고 그 멘드스는 사경을 헤메던 중 프라두로부터 응급처치를 받아 목숨을 건진 이후에 주앙 에사를 찾아온 것이다.


명망 높은 의사였던 프라두는 멘드스를 살린 후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참지 못했다. 자신은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임에도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옳은 것인가. 그가 저항운동에 열심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증명.


프라두에게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인물이 있다. 조르즈. 그의 오랜 친구. 그 오랜 친구도 멘드스를 살린 이후 자신을 찾지 않는다. 너도 나를 피하는 것인가? 물으러 온 프라두. 조르즈와 함께 있던 에스테파니아(일명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저항운동에 깊숙히 개입해있던 조르즈는 점차 에스테파니아를 양날의 검으로 인식한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 문서를 기억하게 하고 소각한다. 점차 그녀의 기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만약 그녀가 상대편에 포섭된다면?

조르즈는 에스테파니아를 제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한편 프라두와 에스테파니아는 서로에게 끌리는데. 조르즈에게 둘이 키스하는 모습을 들켰다. 아무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던 그와 그녀. 그러나 질투의 힘은 세다. 명분이 있는 제거. 조르즈는 주앙 에사에게 에스테파니아를 찾게 한다.

프라두를 찾은 주앙 에사는 에스테파니아를 찾는 목적을 이야기하고, 에스테파니아는 이를 듣고 경악한다.


프라두의 선택은? 에스테파니아와 떠나기로 한다. 그들에게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까?

에스테파니아는 프라두와 도피를 하던 중 프라두의 미래에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둘은 헤어진다.


얼마 후 프라두는 목숨을 잃었고, 에스테파니아는 프라두가 자신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오해한 채로 살고 있었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가 남긴 책을 읽고 그가 동맥류를 앓고 있었음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시작된 여행.

정적인 삶과 규칙적인 일과가 정체성이던 중년의 남자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얻게 된다.

한 남자의 생애를 쫓으면서 그는 한 인물(프라두)을 존경하는 사람(프라두의 동생), 연인이었던 사람(에스테파니아), 서로에게 절친이자 질투심을 안겨주었던 자(조르즈), 한때 원망했던 사람(주앙 에사) 등 다양한 주변인물을 만나게 된다. 가족사.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 프라두와 아버지 그 둘은 끝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프라두의 문장은 그레고리우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지만, 프라두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은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흔들어놓았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는 언제나 마지막 문장을 두려워했다. 책을 중간쯤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문장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늘 고통스러웠다." 419쪽


이야기의 마지막. 그는 베른으로 가는 열차를 탄 것인가. 새로운 연인과 만남을 이어갈 것을 선택할 것인가.

책의 표지 기차역 플랫폼. 그레고리우스로 추정되는 남자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고 책방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찾은 그날을 기점으로 그레고리우스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점.

독자의 선택이 궁금하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프라두가 썼던 글입니다. 607쪽


추리 미스테리 탐정소설로도 철학입문서로도 읽힐 수 있는 책.

저자의 흔적을 쫓아 행간의 의미를 짚어내고 관계자에게 이를 전달해 오해를 풀어내고 저자의 인생을 완성시켜주는 독자라니. 저도 그런 독자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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