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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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나쓰키는 특별한 소녀이다. 초등학교 5학년. 마법소녀. 역앞 슈퍼 진열대 구석에서 마법경찰 퓨트를 발견하고 마법을 배웠다. 예를 들면 '사라지기'. 진짜 사라지는 건 아니고 숨을 죽이고 기척을 숨긴다는 뜻이다. 언제 쓰냐고? 가족들을 위해 쓴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부모님과 언니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늘 이 말을 떠올린다. 내가 없으면 셋은 진짜 가족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가끔은 셋이서 오순도순 지냈으면 한다.


할머니집에 방문한 다음날 오전 그녀는 막 혼인식을 올렸다. 사촌 유우와. 나름 연인으로 오래? 지냈던 듯 하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은 유우는 '외계인'이다.

둘만의 혼인식을 마친 후 부부의 규칙을 정한다. 하나, 다른 사람과 손잡지 말 것(예외 - 포크댄스 시간에는 허용된다). 둘, 잘 때는 반지를 끼고 잘 것. 그리고 셋,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저자 무라타 사야카의 작품을 읽으면 묘한 긴장감이 든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 정해진 선을 따라 순서대로 가는 것에 익숙한 나같은 사람은 예측하기 버겁다.


"무슨 뜻이야?"

"다음 여름에 또 우리가 무사히 만날 수 있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살아남아 내년 여름에 건강하게 만나자고 약속하자."

"알았어." 39쪽


유우와 혼인한 이유.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쓰키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다. 스스로는 얕잡아 보는 상태가 된다.

집에서 부정적인 말만 들어와 칭찬에 목말라 있다. 그리고 집에서 버림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가정에 기생해서 살아간다'니 이 아이는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어른도 고생이 많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도구로서 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나쓰키에게 마법이 필요한 순간.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세번째 규칙은 나쓰키를 위한 주문이었다.

아이를 도와줄 어른이... 없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어렴풋이 예견을 하지만 이겨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쓰키는 유우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가기를 원한다. 결국 실패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쓰키는 그런 일을 겪은 후 어른이 되었다.

나쓰키는 세상을 공장이라 여겼다. '모두 공장을 믿으며, 공장에 세뇌되어 공장을 따르고 있다. 온몸의 장기를 공장을 위해 쓰며, 공장을 위해 노동한다.'고. '세뇌'당했다고 표현한다.

육체적인 관계를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했다. 남편과 나쓰키는 '완벽한 세뇌에 실패한 사람'이다.


현재 나쓰키는 34살이다. 그리고 남편은 공장에서 해고당했다. 어디서 살까? 어릴적 할머니집으로 가볼까?

그가, 유우가 있을지 모른다. 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이십삼 년이 지났는데, 인상은 거의 그대로였다.


남편 옆에서 유우를 향해 말문을 연 나쓰키는 말한다.

"그 뒤로 얼마 안 있어서 나도 포하피핀포보피아성인이라는 걸 알았어. 퓨트가 가르쳐줬거든. 남편에게는 말했어. 하지만 이제 우주선이 없잖아. 그러니까 숨을 죽이고 지구성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유우는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어릴 적에는 그런 공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어른이다, 누가 뭐래도 지구인이고 평생 이 별에서 나갈 일은 없을 거라 말하는 유우,

둘에게는 틈이 생겼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유우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해있구나. 책장을 넘기면서 조금 안심했다. 그런데 유우 역시 지구별 인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었나보다. 나쓰키, 남편, 유우는 기존의 관계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그저 살아남는 것에 포커스를 두기로.


아. 어질어질한 전개이다. 외계인의 눈으로 본 지구별 인간이란 이토록 혼란스러운 것인가.

윤리? 평판? 질서? 빅뱅이 일어났다.

아마도 포하이핀포보피아 성인의 숫자가 늘어날 것 같다.

이제 지구별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두렵다. 리뷰를 남기는 이 순간이. 역시 무라타 사야카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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