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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 우리들의 자화상
류상영 지음 / 논형 / 2022년 9월
평점 :
이 글을 적는 나는 1981년생이다. 광주 출생. 전남대 졸업.
전남대가 있는 용봉동 옆에 신안동에 살았다.
어릴 때 만화책을 사러 전남대 근처에 있던 서점에 자주 갔었다.
최루탄을 마신 적이 잦았다는 이야기.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다고 가졌지만 결국엔 눈물 콧물 범벅.
(군대에서의 화생방 교육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선행학습 덕분인가 싶다.)
1997년 대선 전날 빙부님 부고 소식을 듣고 다음날 대선 중계를 보았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매년 5. 18.이면 망월동에 정치인들이 출몰했던 것 같다. 시대정신이라며 5. 18.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광주는 5. 18.에 갇혔다.
자라면서 도대체 광주와 김대중 대통령은 무슨 관계인지가 궁금했었다. 의외로 학교 다닐 때 5. 18.에 대한 교육은 받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고나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거나 영화로 접했을 뿐이다.
아버지에게 그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듣기는 했다. 아버지를 태운 트럭이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낌새가 이상해서 논두렁으로 뛰어내렸다고 하신다. 어쩌면 나란 존재는 세상에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특별한 교육을 받거나 직접적인 언질을 듣지 않았음에도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은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성공한 대통령을 꼽으라면 그를 꼽는다. 정치인 관련 서적을 가끔 읽었는데 김대중 자서전만큼 영향을 미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이후 호남에 어필하는 정치인은 여럿 있었으나 아류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강단있던 그의 생전 모습이 선선하다. 무용담처럼 전해지는 육성 연설과 구름 관중을 사진으로만 접한 세대였음에도.
유신. 박정희와 관련된 기억은 한홍구 저서로 접했다. 비판적인 시각이 주류였다는 이야기다. 직접 보고 들은 것 없이 사료나 책으로만 접할 수 밖에 없는 시절. 효자동 이발사의 대사로 기억하는 것 같다. '각하. 너무 오래 하시는 것 아닙니까.'라는. 집권 18년.
평가는 갈라진다. 유신체제가 필요불가결한 시대였다. 재임 중인 1972년이 되어서야 북한의 경제력을 추월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니면 중화학 공업 발전은 요원했다. 고속도로 건설과 사회적인 인프라가 이때 마련되었다.
그리고 과. 군부정권의 지속. 민주주의를 향한 타는 갈망을 외면했던 시절. 당시 국민들의 교육열과 새마을운동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 누가 집권하더라도 경제는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 등.
역사에 만약은 없다.
역사에는 없는 만약이지만, 이 책은 그들의 했을법한 대화로 구성되었다. 흥미로운 기획이다.
3부로 구성.
1부_인간적 대화 : 나는 누구인가?
2부_ 철학적 대화 :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부_ 역사적 대화 : 박정희와 김대중이 얽혀 살아온 역사 현장들
그분들이 생전에 실제로 허심탄회하게 장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1968년 신년 인사회에서의 짧은 만남에서의 대화가 있기는 하다.).
어떤 대화가 이어질까?
크게 관심이 있게 본 부분이 있다. 바로 지역감정에 대한 부분.
자 대화를 일부 들여다보자
박정희 : 내가 지역감정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김대중 씨의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역감정은 한 사람의 생각과 전략에 의해 생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내 집권기간 동안 특히 초기에 영남지역에 투자가 집중되어 지역 간 불균형이 생겼던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적 전략과는 상관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위한 선택과 집중의 일환이었습니다.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투자하여 가난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공업단지들도 수출과 임가공에 적합한 임해지역을 선택하다보니 생긴 문제이기도 합니다.
151쪽
김대중 : 나는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였고, 호남지역이 개발경제 시대에 소외되었던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소위 호남소외론은 강준만 교수 등의 사회적 논쟁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추구했던 민주적 통합과는 무관하게 고향이 목포라는 이유로 호남과 동일시 되었고 지역감정의 상징 내지 피해자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도 '김대중을 석방하라'가 주요 구호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광주 민중항쟁도 전두환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죄로 탄압하고 광주항쟁을 촉발하려는 음모가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내가 없었다면 전두환이 광주항쟁을 조장하지도 않았을테고 광주시민들이 희생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역사적 죄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152쪽
개인적으로 1997년 대통령 선거 토론이 기억에 남아있는데, 그때까지도 소위 빨갱이 논란은 계속되었던 것 같다.
미국, 일본, 북한 등 외교문제에 대한 관점도 흥미롭게 읽었다.
미국에 대한 입장차이가 신기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 꼭 읽어보시기를.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관점을 보면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공과 과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논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음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하실 법한 말을 옮긴 것.
"마치 박정희 시기에 경제성장에 성공했으니 다른 모든 것을 정당한 것으로 평가해야 하며, 다른 지도자였다면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므로 박정희 체제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논리가 우리 사회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반대의 흑백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 대한 평가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문제점은 사후의 결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무관하게 진지하게 검토되고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다면적이고 민주적인 평가 방식이며 진정으로 역사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시각이라 생각합니다." 261쪽
사료와 사실에 기초하여 박정희, 김대중, 그리고 그들이 살아간 한국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사진으로만 봤던 부분,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되짚어본다. 각자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안을 놓고 한 일과 그에 대한 비판과 재반박을 함께 읽다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 제목만 듣고도 이 책의 질핍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용을 보니 저자의 노력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이다. 독자인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느낌이나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