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박소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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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 뭐지? 윤기나는 구슬? 뭔가 간지러운 느낌을 주는 이 단어의 뜻.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저는 이번에 알았어요. 바로 이 책의 제목을 통해서.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네요. 늘상 파고가 높지는 않을테지만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은

내 안의 윤슬. 작가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잘 발효된 사연. 추천사의 첫 줄에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님이 남기신 문구예요. 잘 발효되었다니.

책을 읽는 중에 특히 와닿은 문구. 그래요. 잘 발효된 사연 이보다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아요.


여러 이야기들이 실려있지만 제가 특히 마음이 기울었던 편은 "흑과 백"이랍니다.


작가님 집 다용도실에 몇십 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바둑판에 얽힌 이야기. <고스트 바둑왕>의 독자라면 혹시나 바둑판을 떠나지 못하고 유지를 이어 신의 한수를 완성시키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이'의 영혼이라도 깃들어 있나?하는 기대를 하겠지만. 이것은 아버지와 아이의 이야기.


30여년 전 작가님의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열린 아마추어 바둑 토너먼트 대회.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고 귀가한 남편이 들고온 바둑판. 토너먼트 답게 난다긴다 하는 고수들의 초식들을 무찌르고 타낸 부상인지라 얼마나 아꼈을지는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가지 않나요? 그런 바둑판이 집 다용도실에 방치되어 있다니.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제 막 돌을 지난 아들이 거실 한쪽을 차지하던 바둑판 위로 넘어지고 맙니다. 아이의 이마에 흐르는 피. 하필 바둑판 모서리에 넘어진 것. 퇴근한 후 아이가 자신의 이마와 바둑판을 보면서 울기 시작하는데. 작가님의 남편은 아이를 꼭 안아주고는 말 없이 바둑판을 다용도실에 옮겨둡니다.

그렇게 지금의 자리에 방치되고 말지요. 사족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려집니다. 그날의 분위기. 그리고 그 마음이.


바둑에 엃힌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바둑광이던 작가님의 오빠가 암 선고를 받아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작가님의 남편은 휴대용 바둑판을 가지고 가 서로 말 없이 바둑 삼매에 빠져듭니다. 흑과 백의 돌을 두면서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요...


작가님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바둑에서는 신의와 절개는 있어도 배신이나 변절은 없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에게 주어진 바둑돌을 놓아야 하듯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았을까."

"지난날들을 복기한다면 성공을 백으로, 실패를 흑으로 봤을 때 우리네 인생은 흑일까 백일까?"


신기합니다. 몇 페이지 안되는 분량임에도 각 사연들을 덮고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묻습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느낌이나 의견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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