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럴 것 같다.
누군가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서는 '뜸'이 필요할 것 같다.
선뜻 말하지 못하고, 태연을 가장하면서 꺼내는 효정의 말
"아무래도 간호사를 ... 경찰에 신고해야 될 거 같아요."
(머뭇)... 같이 ..가 줄 수 있죠...?
69세 여성. 고소인. 전배우자와 사별, 현재 동거중.
29세 남성, 피의자, 간호조무사
...강간치상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를 하려는 경찰의 웃음.
작은 동네, 토박이들. 소문이 두려워진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효정은 늘 가던 수영장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말(아마도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하지는 않았을 말 "저 아줌만 언제부터 수영을 하셨길래 여태 몸매가 처녀 같으시대~" "그니까~남편한테 사랑 받겄네!)에도 움츠러든다.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생각보다 젊고, 선한 인상의 이중호. 합의하에 관계를 한 것이라 부인한다.
그에게 나타난 동인(효정의 동거인)이 그에게 자백해달라고 한다. 그는 이중호의 치부를 알고 있다.
동거인인 효정의 일로 복잡한 그에게 아들이 이혼을 고백한다. 며느리를 찾아가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도망하듯
돌아선다.
효정은 동인 앞에서 사라진다. 피붙이가 없다던 그에게는 딸이 있었고, 그 딸은 현재 소식이 닿지 않는다.
경찰은 '치매'를 의심하고 있고, 그리고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던 과거가 밝혀진다.
다행히도 효정은 '치매'가 아닌 듯 하다. 그녀가 기억하던 사람은 실존 인물이었고, 뜻밖의 계기로 기억의 단편이 맞춰졌다.
사람의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순간 툭 튀어오르는...
" ...형사님이 보시기엔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로 보이세요?"
"제가 젊은 여자였으면 그 사람이 구속이 됐을까요?"
처벌이 두려운 것일까. 그 이후의 손가락질이 두려운 것일까.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는 어느새인가 한없이 가벼워진 듯 하다.
잘못했다, 반성한다. 용서를 구한다는 말의 의미 역시 "인정못한다, 오해다, 억울하지만 그런 걸로 하겠다"로 바뀐 것 같은 착시를 느낀다.
효정은 중호의 장인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았다. 고발장만을 잡지에 끼워두고 왔을 뿐,
중호의 장인이 고발장과 육아용품을 태우고 있는 시점에 중호는 효정의 멱살을 잡고 있다.
중호가 장인을 보았을 때 장인은 중호를 받아들이려 했을까? 딸을 위해? 궁금해진다. 이미 흘러버린 중호의 부인과 장모의 눈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그리고 효정은 자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딸을 보고 온 후 결연한 표정으로 고발장을 날린다.
이상하다. 언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것만 같다.
각박해진다. 법적인 처벌이 능사가 아니건만 법정까지 가게 되면 오히려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다.
사실은 하나인데, 하나가 아니게 된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예수정님의 눈빛이었다.
후련하지 않고 흐릿한 것이 남아 있다.....
이 책의 미덕은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특히 각본의 방향이 여러차례 수정되어가는 과정과 영화를 찍는 장면. 말하자면 메이킹 필름을 보는 듯하다는 것.
처음 각본이 수정되는 부분을 보다 각본을 보게 되니 더 눈에 들어온다는 것.
* 이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개인적인 느낌과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