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
내용에 대한 기시감이 아니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는 의미에서의 기시감이다.
한병철 교수님 책(피로사회 등)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문장이 굉장히 압축되어 있고,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가고 "그래서, 내용이 뭔데?"라고 지인이 물어오면
대답을 하기엔 입을 열어 나오는 말들이 부끄럽다고 느껴지는 종류의 책.
그래서 좀 더 알고싶다, 더 알아겠단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
탈합치. 이거 혹시 '정반합'의 다른 의미인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장을 넘긴다.
헤겔이 등장하고 그의 사상이 나오기는 하지만 좀 더 포괄적인 혹은 미시적인(?)
그래, 적절한 단어를 찾자면 '본질적인' 내용을 다룬다.
공부를 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은 책의 구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차례를 보면 한국어판 서문 부터 9. 근대성까지의 분량이 135페이지 정도된다.
이어지는 '역자 해제·탈합치의 정치', '역자 후기' 부분의 분량이 68페이지 정도.
저자가 아닌 역자가 하고 싶은 말이 이 정도로 많을 정도의 책이라니.
보통 6페이저 정도, 혹은 많아야 20페이지를 넘지 않았던 듯 한데. 이 정도라면 역자가 책에 대해 품고 있는 감탄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즉, 이해를 하려면 역자 정도의 애정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뷰어로서 챙피한 고백인데, 아직 내공이 이 책을 A4 용지 한 장 못되는 분량으로 축약할 엄두를 못내겠다.
이럴 경우는 보통 책의 내용 일부를 발췌해서 적기도 하는데, 사실 책에 줄을 그은 부분이 대부분이라 문장 고르는 것도 버겁다.
예전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을 읽었을 때가 떠오르는데,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의 대단함을 일부나마 기재하는 것으로 짧은 감상을 마친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후로(그 책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문학작품의 내용을 빌려와서 예를 드는 경우가 많아진 듯 하다. 이 책에도 매 장마다 고전이 등장하고 예술작품이 등장한다. 무려 성경의 내용이 인용되기도 한다.
등장하는 작품들의 내용을 모름에도 아는 척 하고 싶게 만드니 지적 허영심을 너무 자극하는 부작용이 있다. 부디 이점 유의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