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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평점 :
제왕의 자리에 오르려는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지로서의 아내.
제왕업 하권에서도 여전히 소기는 왕현의 곁을 자주 비우게됩니다.
혼례도 제대로 치루지 못한 신부를 두고 3년의 세월을 전장에서 보냈던 그였는데.
고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의 천직이 개척과 정벌이라면, 여자의 천직은 보호하고 돕는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이 되어서야 마침내 고모가 한 말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내 손에 쥐여진 것은 단순히 오라버니, 자담, 온 가족의 안위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수만 백성의 목숨까지 내 손에 쥐여 있었다! 88쪽
왕현이 깨달은 본인의 지위. 덕분에 그녀는 매순간 냉철하게 판단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 결과 누군가의 일족이 전멸하게 되고, 유배지로 보내진다. 도전을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쳐야 하나, 심지와 달리 그녀의 육신은 너무도 나약합하다. 이런 이유로 병상에 있는 장면 역시 자주 등장한다.
좋지 않은 몸 때문에 자녀의 출산을 포기하고 있던 중 기적처럼(사실 어느정도는 모험일수도)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그녀를 강하게 키우고자 함인지 혹은 시기를 한 것인지 분만의 순간을 혼자 맞이해야 한다(그리고 이후 그녀의 행보는 비극을 본인의 대에서 끝내기 위해 더욱 냉정한 사람이 되어간다.).
소기의 부재 중에 왕현은 쌍둥이를 분만. 태어난 이후에 비로소 전장에 있던 소기로부터 자녀들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받게 되고, 당연히 돌아올 줄 알았던 그는 변방의 반란을 정벌한 것을 넘어 북방 정벌을 위해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길을 떠난다.
부부가 자녀를 포기하게 된 원인이 된 사건. 왕현이 암살을 눈치채고 소기의 앞을 가로막아 독이 주입되었을 때, 쉽사리 깨어나지 못하는 아내에게 첫인상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평생을 찾았던 사람이랑 혼인했는데 정작 3년이나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고. 그 고백이 참 절절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 정인인 자담과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연을 보면 자담이란 사람의 심정을 알겠다가도 이제 그만 놓아줄 때임을 알아달라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서 4부 이후에 등장하는 후기 부분이 울컥하게 다가온다.
하권에서 유난히 배신과 처절한 응징이 연이어 벌어지니. 우리 드라마 중 '황금의 제국'이 떠올랐을 정도.
황금의 제국에서 이요원 배우가 맡았던 재벌가 회장 따님의 역할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전 친분이 있던 사람들을 처내면서 아파하고 그러다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장면이 그러했다.
다만. 왕현은 소기의 배우자. 결국 천하패업을 이룬 후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서른둘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까지 모든 허물을 본인이 안고가려는 듯. 사관에게 부탁을 하는 장면이 그답다고 느꼈다.
일세의 여장부. 왕현.
사극을 보는 듯. 영화를 보는 듯. 무협지가 아닌 중국소설을 이렇게 몰입하며 읽은 것이 오랜만이었다.
살아있는 캐릭터. 쉴새없이 이어지는 사건. 돌이켜보니 이미 암시가 있었던 배신. 서로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에피소드. 충성과 욕망 그 사이. 정절과 원망 사이. 수많은 인간상을 보여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