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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 -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선동열 지음 / 민음인 / 2019년 10월
평점 :
"과정은 중요하다. 실패도 아름답다. 그럼에도 이겨야 한다."
표지에 적힌 문구이다. 그가 짊어지고 온 부담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살아온 이력. 자서전.
어릴 때부터 해태팬이어서인지, 그 이름 석자만 들어도 뭔가 해 줄 것 같고, 그가 몸을 풀고 있으면 등판하지 않아도 이길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 있었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보니 그립기도 하다. 빨강과 검정.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팀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내가 응원하는 팀의 우승이 당연시되던 때가 있었다. 김응룡 감독, 선동렬, 이종범, 한대화, 조계현 등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하던 전국구 스타 구단.
이후에도 몇 년 주기로 갑작스런 우승을 안겨 뿌듯함을 주기도 하지만(2009년, 2017년. 그때를 떠올리면 꿈처럼 느껴진다), 당시처럼 막강 전력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절을 떠올리면 뭔가 아련하다.
선수보다 감독님이란 수식이 더 어울리는 지금. 그의 예전 모습을 보니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 선감독님이 날씬하던 때가 있었지. 팔다리가 길고, 유연하다.
기록들이야 언제든 검색하면 볼 수 있으니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뭐, 선동렬이니까. 하고 넘어간다.
압도적인 방어율.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 나고야의 태양이라 불리던 시절의 뿌듯함.
일본으로 건너갔을 무렵의 선감독님 나이가 선수로서 상당한 나이였음을 알게 되고, 그가 첫해의 굴욕적인 부진을 털어내고 다시 재기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어린 시절 일기장을 쓰는 습관과 러닝의 중요성, 투수가 해야 하는 기본에 대해서도 사진을 활용해서 설명을 하는 부분들을 보면 투수를 하고 싶어하는 어린 친구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팬들이 볼 때는 '아, 감독님. 글을 이정도로 쓸 수 있다니' 감탄하게 된다. 읽다가 내가 감탄하자, 와이프는 옆에서 '설마, 감독님이 전부 쓰셨겠어? 대필해겠지?'라며 확인되지 않은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야기의 진정성은 당사자가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거라 확신한다. 누구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상황이 이런 거였다는 적극적인 해명이 없는 것이 그 답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내용에는 동의하는데, 책 내용 중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는 국보급 투수가 아니다'라는 부분. 동의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실패에 대해, 대기록을 앞두고 놓쳤을 때 등의 에피소드를 쓰셨는데, 본인 스스로 부단히 노력해서 다시 재기했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야구팬이라면 부인할 사람이 없을텐데 본인이 그러시니 원 ㅎㅎㅎ
감독으로서의 커리어 역시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찌되었든 지역감정이 살아있을 시절 광주 출신이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삼성감독을 했었고 2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는 것.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향님인 기아에 오기 위해 다른 팀의 오퍼를 사양하기까지 한 것. 각종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낸 점. 최초의 국가대표 전임감독까지 역임했으니.
2020도쿄올림픽에서 감독님의 모습을 찾아보진 못하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연수하시고 돌아오셨을 때 더 큰 짐을 맡으시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감독 재임 시절에 얽힌 좋지 않은 역할을 맡아야 했던 부분에 대해서 짧게나마 언급하신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여겼습니다. 악역을 맡을 수 밖에 없음을 짧게 나타내셨는데, 적극적인 해명과 이해를 구해야 할 때가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는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만요.
감독님도 참 피곤하게 사신다고 느꼈습니다. 입이 무거운 사람들이 그러하듯. 언젠가는 알아줄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동안 말 못했던 심정에 대해 제대로 털어놓칠 않으셨어요 ㅎㅎㅎㅎ
사람 하나가 희망이 되고, 버팀목이 되고. 스포츠신문 한면을 볼 때마다 힘을 얻었던 시절을 추억하고.
이 책이 좋은 선물이 된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결혼을 앞 둔 따님에게 하는 말이 눈에 들어오네요.
마음의 짐은 당분간 내려놓으시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
빠른 시일 내 다시 어떤 형태로든 복귀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아마,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의 심정이 복잡할 듯 합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