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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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었을 땐 요즈음의 시류에 맞지 않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게으름 예찬이라.

"예찬"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으름의 필요성? 정도가 어울리리라.

그런데 영어 제목과 부제를 보면 구미가 당기기 시작한다.

"The Pleasure of Leisure",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이쯤 되면 원제목을 살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글 제목만 읽었다가 본문을 읽던 중에 다시 표지로

돌아왔거든요.

서문에서부터 저자의 식견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그간의 모든 과학적 진보와 케인스의 간결한 공식에 따른 복리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자유 시간은 왜 그렇게 적을까? 그리고 할 일 없는 시간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왜 우리는 어쩔 줄 모르고 갈팡질팡할까? 13쪽

모든 사람이 조금씩 나누어 일을 덜 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생산하겠지만, 현대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만큼을 생산하기 위해 일부가 초과노동을 하고 나머지는 실업 상태로 지내기 때문에 모두가 비참할 수 밖에 없다.

17쪽

두 번재 원인은 매우 단순하지만 탐욕이다. 18쪽

일이 아무리 즐겁고 유용하거나 필요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일종의 노예상태다. 그렇기에 여가의 첫째이자 으뜸가는 목표는 우리를 우리 시간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20쪽

여가의 첫째이자 으뜸가는 목표는 우리를 우리 시간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

하우스 푸어에 이어 타임푸어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없는 살림인데도 이를 꾸려가는 데에도 매번 하루의 시간이 너무도 짧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현재에 만족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뒷받침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게으름 예찬'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포기하면 편하다. 라는 말, 그 근거가 되는 내용이라 지레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가재, 붕어로 살아도 괜찮다는 내용은 아닐까. 개천에서 만족하는 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자긍심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소유와 존재에 대한 균형을 찾는 법. 시간의 주인이 되는 법.

1장 빈둥거림의 미학 중에서

달리 말해 할 일이 많지 않을 때는 게으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얘기다. 57쪽

"우리는 깨어 있을 때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잠을 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잠이 만들어내는 달갑지 않은 에너지를 배설하기 위해 이따금 깨어나야 한다." 59쪽

간단히 말해서 늦잠 자기는 언제나 당신이 빈둥거릴 수 있다는 권리 주장이 되어야 하며, 계획에 따른 실천임을 보여주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61쪽

낮잠은 '자유와 재력'을 나타내는데, 결국 그것은 여가의 본질 자체다. 파코의 말을 믿는다면, 낮잠은 사실 '삶을 사는 기술의 백미'다. 65쪽

요즘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모험을 하기 위해서. 75쪽

'더 많은 측면에서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76쪽

어쨌거나 하는 일이 적을수록 시간은 더 천천히 지나간다. 언젠가 괴테는 '게으름'은 시간을 참을 수 없이 길게 만들지만, '일하는 것'은 시간을 짧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 그렇더라도 결국엔 사후경직이 찾아오리라. 그건 사실이지만, 그게 꼭 눈 깜짝할 사이는 아니다. 143쪽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143쪽

1장만 해도 이렇듯 주옥같은 문구가 가득하다. 일이 적을수록 시간은 더 천천히 지나간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라니...

그래. 그렇구나.

2장 깃들이기와 단장하기

새로운 개념들을 배워간다. 깃들이기, 단장하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번역 전의 문구이다. 어떤 문구를 이리 번역한 것일까.

1장이 빈둥거림의 미학이라면 2장은 빈둥거림의 형태라고 할까. 빈둥거린다는 것은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더라.

이는 3장과도 연결이 된다.

3장 놀이의 발견

내가 주장하는 바는 놀이가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문화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명보다 한참 전에 등장했다. 우리가 '문화'라고 일컫는 것들이 바로 놀이의 수많은 표현들인 것이다. 199쪽

놀이를 멈춘다면 우리는 그저 현재 이 순간에 쉬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순간을 산다는 것은 죽음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244쪽

최고의 여가 활동이 우리 안의 근본적인 무언가를 살찌운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245쪽

노는 것은 당신 자신의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274쪽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의 내가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소유와 존재 사이에 더 나은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 책 읽어봐야 한다. 심리학 서적일 수도 있고, 에세이일 수도 있는데, 읽다보면 공감하는 부분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다음 번에 읽었을 땐 처음에 들어온 문구와는 다른 문구가 눈에 들어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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