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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회사생활하면서 불합리한 지시를 당하거나 인사고과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혹은 과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았거나 공을 전부 다른 사람에게 빼았겼다거나 하는) 경험이 없는 분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요? '사내정치'라는 말이 일상적인 용어로 사용될 정도이니. 줄을 잡고자 온갖 일을 하기도 하고.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조금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부제인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한자와 라는 캐릭터가 과잉된 것은 아닌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고 묻고 싶었던 지점이 있었는데, 책장을 마지막까지 넘기면 그제서야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등장합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중국 고사가 생각나는 장면이 있는데, 세월이 그 정도 흐른다면 묻어두고 사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동력이 되어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었겠지요.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 중 하나는 '보고'체계였습니다.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사전에 미리 보고, 안되면 조치 후 사후보고를 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지휘계통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런데, 상급자에게 보고를 했음에도 그 상급자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는 문제가 발생한 다음 뒤처리(책임)을 떠넘긴다면...
- 분식회계라는 용어가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몰라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지점장의 지시로 대출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고 거액의 대출을 해 주고 난 이후 부도가 나게 되고 지점장은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부하직원에게 떠넘기려 한다.
그러나 지점장이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그 부하직원이 다름 아닌 한자와 나오키 라는 점입니다.
한자와는 문제를 파고들어 결국 지점장과 서부오사카철장 사장과의 공모까지 밝혀내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사죄하였다면 좋았건만 역시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사과를 하는 것은 어렵겠죠. 그렇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습니다.
나중에는 지점장이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지점장의 착각은 한자와가 그 전까지 경험했던 직원들과는 달리 순종적인 성격이 아님을 미처 몰라봤다는 것. 결국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한자와를 적극적으로 영전시키고 그는 좌천됩니다.
형사처벌은 가까스로 면하게 된 셈이니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그마저도 세심한 성격으로 남편이 평소와 다름을 알아 챈 현명한 부인이 한자와에게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간 것 때문인데, 그는 이후에 아내에게 자신의 속내를 더 털어놓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됩니다. 지점장은 한자와의 마음이 약해진 이유에 대해 인지를 한 것인지 혹은 나중에라도 깨닫게 되었을지.... 지점장의 권위의식과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음에도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품는 존경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앞으로는 성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래봅니다.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들면서 그전까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아내와 자녀들의 가장으로서의 지위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다니..
한자와의 아버지와 얽힌 에피소드를 보면서 어린 나이에 어떤 생각으로 버텼길래 그렇게 오랜 세월을 잊지 않고 있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성실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알 것 같았습니다. 제조업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산성 있는 일이니까요. 땀 흘려서 일하는 삶의 무게. 아버지들이 살았던 세상...
일본소설을 보다보면 가끔 상식을 파괴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경우를 보게되는데(예를 들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인더풀', '남쪽으로 튀어라' 처럼), 현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라서인지 판타지 느낌이 강했어요.
이에 반해 이 책은 '은행'이라는 공간과 은행원의 업무인 '대출'과 관련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 거품이 꺼지기 전과 후의 시대상황을 잘 설정한 점에서 현실성 있는 판타지라고 느꼈어요.
소수의 사람들과 대면하여 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다수의 인원이 한 곳에서 일하는 직장에 대한 판타지가 있습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과 나누었던 앞으로의 계획과 각오는 이후 점점 무뎌지고 어느 누군가는 지금 시점에서 살아있지 않은 사람이 되고 어느 누군가는 뒤쳐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서로 의지할 수 있어 버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동기들과 나누는 술잔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이 점에서 이 책은 저에게는 판타지네요. 한자와 나오키와 같은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역시 영업2부 차장이 된 한자와 나오키의 이후 행보 역시 기대됩니다^^
순차적으로 4권까지 발행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다렸다가 얼른 구매해야겠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