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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선 옮김 / 에이치 / 2019년 2월
평점 :
개연성. 내러티브의 중요성.
적지않은 분량의 책을 마지막장(607쪽)까지 넘기게 한 힘은 역시 이야기의 힘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면서 읽었다. 분명 어릴적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 그 책은 군데군데 삽화가 들어있고 문장이 짧았던 듯 하다.
시계를 갖고 있는 토끼. 아마 회중시계를 접한 최초의 기억이 아닐까.
이 책 어느곳에 굵은 글씨로 나와있는 걸리버여행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처럼 앨리스가 작아졌다가 커졌다하는 장치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몸의 일부만 등장했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체셔 고양이 등등.
반가운 기억들이 여기저기 등장하는 통에 다시금 앨리스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오면.
반가운 인물들에 불어넣어진 입체성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디즈니에서 만든 1951년작 에니메이션에 그려진 하트여왕은 심술궂은 얼굴에 덩치가 있는 인물로 그려졌었다. 그도 앨리스만큼이나 꿈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더구나 그 계획은 소박하지만 구체적이기까지 했었다.
주인공인 캐서린. 하트여왕.
그 하트여왕의 전매특허 대사인 "당장 저자의 목을 쳐라."가 여왕이 된 캐서린의 목소리를 통해나오기까지의 사연. 마지막 페이지에 육성으로 등장하는 위 대사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분노의 대상을 향한 처절한 울림이었다.
이 대사 한마디를 듣기위해(읽기위해) 600p가 넘는 분량을 채워넣었다(읽을 수 밖에 없었다).
사소한 일에도, 대상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남발되던 이 대사와 희화화된 캐릭터였던 하트여왕은 프리퀄로만 존재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존재가 되버렸다.
제빵사. 달콤한 것들을 만들어낼 줄 알던 꿈많은 소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결정권자(왕. 부모)에게 휘둘려서 원하지 않던 자리(여왕)에 오를 운명이었지만 마지막은 스스로 결정권자가 되어 여왕이 된다.
아마도 첫사랑이었을 조커가 체스에서 '룩'(즉 여왕의 호위무사)에 해당한다는 대목에서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이 예고되었다. 룩은 최후에 자신을 희생해 퀸을 지킬 수 있는 능력 혹은 효능이 있으므로.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같아져가지만 서로를 위한 계획은 달라져가고 있었다. 왕이 보내는 편지와 선물들에 제스트의 본심도 전달되지만, 자기를 선택할 때 버려야 할 상대방의 것들을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한 나머지 서로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처절한 로맨스라니... 하트의 여왕과 궁중광대의 사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궁중광대는 등장한다. 그래서 최후까지 둘의 생존을 기대하였으나 결국 제스트는 그 하나였다.
제스트의 죽음을 놓고 메리 앤을 원망하는 장면과 피터 부인이 재버워크로 변한 원인이 자신이 만든 호박케이크에 있음을 알기에 여왕은 결코 달콤한 것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행복한 왕은 여전하다는 것.
공작에게 부인이 있다는 것(아마도 레이디 마가렛) 정도.
여전히 토끼는 시계를 보면서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
모자장수와 3월 토끼의 다과회.
가짜 바다거북의 사연도.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앨리스의 존재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
이상 로맨스, 스포츠, 희극과 비극이 모두 등장했던 마리사 마이어의 하트리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