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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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을 묘사한 책들이 많았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계는 모순투성이였고, 단순하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풀리는 문제임에도 여러가지 핑게를 대면서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미디어에 노출되고 묘사되는 아이들의 세계 역시 어른들의 그것처럼 점점 알 수 없는 이유로 복잡한 것이 되어버렸다.

공부라는 것. 왜?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보다 주어진 상황에 적응을 할 것을 강요하면서 아이들의 일과표는 어른들의 것보다 훨씬 빡빡하고 치열해졌다.

입시에 가까워질수록 경쟁의 정도가 높아졌는데 어느 순간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점차 앞당겨지더니

급기야 이번에는 초등학교 6학년.....

하긴 요즘은 태교의 중요성까지 강조되는 세상이다.

입장차가 있다보니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난해하였으나,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는 반대로 빨라졌다.

2. 읽고나서

처해있는 상황이 나의 학창시절과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다보니 아이의 반응과 고민, 언어 역시 예전과는 다르다. 그 나이에는 응당 이래야 한다는 기준에서 '윤 설'은 상당히 벗어나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특이한 아이로 그려진다. 세번의 파양 후 '함묵증'을 앓게 되었고,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동정받기 싫어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화장이라는 매개를 빌려 외면에 드러난다.

아이가 철이 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보육원에서 자라게 된 경위를 놓고 한 어른들의 장난에서 기인한다.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다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났을 때 '이모'의 고백으로 진상이 드러난다.

방송이라는 매체의 선정성은 어김없이 '설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와 시청자를 옭아맨다. 어린 시절을 저당잡힌 셈이고 본인의 운명의 희생양인 줄 알았으나 만들어진 설정이었다니, 아이가 잠깐이나마 나름대로의 복수를 상상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공부가 중요하지만, 지금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그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인정받고 나서는 오히려 공부를 놓지 못하게 되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선택지를 박탈당하고 난 후

가만 보면, 상류층이 오히려 공부에 더 집착을 하는 것 같다.

내 아이가 지금 내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은 가진게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공부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자녀들에게 강요를 하는 것이지, 정작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부모가 된 사람들은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학 가고 사회 나와서야 그 격차를 실감했던 내 나이 때의 사람들은 처지가 더 나았던 것일까?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된지 몇 년 안되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하면서 뭔가 무기력해짐을 느꼈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과도한 스케쥴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때부터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닌가.

노력을 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릴 때 아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는 신화를 믿다가 성인이 된 후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 좋을까?

어른들과의 대화라고는 '답정너'가 고작이니, 문제가 생겼을 때. 반항할 때 "왜 말을 하지 않았니?"라는 어른들의 물음은 '비겁한 변명'이 된다.

그래도 이 책에 나오는 곽은태 선생님과 배우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이다(작가님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서 아들인 '시현'이는 좋은 어른(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이 될 것 같다. 한때의 방황으로 끝이 나고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 가능성이 열려있다. 설이로 인해 '부자'가 진정으로 대화를 할 가능성이 열렸다.

그런데 '윤 설'. 설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들의 이중성(곽은태의 경우 모든 아이에게 친절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인 '시현'이에게는 모질게 대한다.)을 알아버려 존경하고 좋아할 만한 어른상을 잃어버렸다.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 줄었을 것 같음에도 스스로 뛰쳐나왔다.

곽은태 선생님 부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잘못을 지적한 사람과의 공존은 어지간한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치부를 들켰기 때문이다.

설이는 어떻게 살게 될까?? 그 후로 이모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수없이 깨어지고 절망하고 그럼에도 버티고 설 그 앞날에 희망이 있길 기원한다. 선택할 기회가 있을 때 누구의 도움없이 온전히 자신의 판단 하에 선택해야 할 그 아이의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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