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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2019년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을 만났다.
표지 뒷면에 '감동'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어 의미가 조금은 반감되었지만,
이과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고 과학이나 수학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마는
토종 문과생인 내가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면 감동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말이다.
작가님이 이 책 구상부터 출간되기까지의 시간이 13년이 걸렸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군입대를 앞두게 되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에 대해 우리나라가 관심을 갖던 시절이 있었다.
내용 자체가 워낙 디테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장면장면들이 많았다.
우주인이 되기위해 오랜기간 동안 꿈꾸었던 사람, 우연한 기회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
열망의 크기와 지원동기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도전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좋은 책은 늘 그렇듯이 나 자신을 소설 속 인물과 경험에 투영하게 한다.
읽는 동안 내내 떠올랐던 개인적인 경험은 신림동 고시생 시절에 함께 했던 스터디원들과의 추억이었다.
신기하게도 5명 중 4명이 시험에 합격하였다. 시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둘째 형, 셋째 형이 먼저 합격. 그 2년 후 막내와 내가 합격하였다.
첫째 형님은 처음 함께 한 2년의 여름을 끝으로 전에 다니던 직장에 복귀하였다.
둘째 형은 여유가 있었다. 불문과를 나왔으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다니. 마지막 4인 중 유일하게 문과생이었던
정우성과 닮아 있다. 사람을 섬세하게 챙기면서도 성격이 늘 좋았다.
셋째 형은 소설 속 누구와 닮지는 않았지만, 댄디한 매력의 소유자로 마땅히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본인만의
철학이 있었던 것 같다.
5명 중 2명이 먼저 합격했기에 남은 사람들이 힘을 낼 수 있었다.
막내는 나중에 듣고보니 몸이 많이 아팠단다. 대상포진에도 걸렸었다는데, 늘상 밝게만 보였던 사람의 소식을 나중에 듣고보니 그 의지가 대단하다.
가장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적 꿈이 법조인이라는 이유로 이 시험에는 나만큼 간절한 사람이 붙어야 한다는 이상한 자의식이 있었던 나는 김태우를 조금쯤은 닮았는지 모르겠다. 뭐, 지금은 아주 어릴 적 장래희망에 적었던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시험에 붙은 4명 모두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있다.
아이러니한게 모르긴 몰라도 중간에 그만 두었던 큰 형님의 경우가 나머지 4명보다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터이다. 증권사에 계셨던 큰 형님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젊음을 저당잡혀 독서실 한칸에 몸을 구겨넣으면서, 하루 몇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옆자리 혹은 뒷자리에 앉은 사람보다 몇분이나마 더 늦게 자리를 뜨는지, 누구는 머리 감을 시간도 없이 뒷머리가 떡이 되어 있더라든지.
변화없는 일상 속에서 시간을 정하고, 진도를 정해서 잠깐 동안 나란히 앉아 공부하던 그때가 그래도 나았던 듯 하다.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아무튼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나열했는데, 중력이란 책은 단순히 "감동스토리"라는 말로 규정하기는 아쉽더라는 말이다(개인적인 의견은 뒷표지 글에서 '감동'이란 글자는 삭제했으면 싶다.)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이진우는 허무맹랑한 꿈은 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가 있고, 두 딸이 있고, 직장이 있고, 빚이 있는 가장이다. 오랜 기간 진행되는 선발절차에 지원하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본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 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승진과 고과에 연연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자신의 꿈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만 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다시 위기를 넘겨도, 절망에 빠지지만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우리네 삶과 겹쳐진다.
이진우, 김태우, 정우성, 이지영.
(사실 김태우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생명을 더 불어넣은 것 같다. 이런 사람 꼭 있다.)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 같다. 이 책은 주위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어진다.
뭐, 조만간에 카톡으로 스터디원들에게 연락이라도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