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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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결국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이다.

전전 정권 시절에 들었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역시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구독의 계기가 되었다.

점차 다른 팟캐스트를 듣게 되면서 이 책의 저자도 알게 되었다. "나는 꼽사리다". 팟캐스트 대화 내용을 묶어 펴낸 노란 색 표지의 책도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 읽은 책의 표지도 노란색이다.

생각해보니 나름 저자의 책을 좀 읽었더랬다. 그 중 가장 대중적인 책의 이름이 '88만원 세대'일 것이다.

태엽이 달린 인형의 모습이 깊이 각인되어 있는 표지. 내용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표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자는 책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일은 누군가 말을 꺼내고 그 말이 여기저기로 전해지지 않았는데도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변화 특히 좋은 변화는 말로부터 온다. 그게 우리가 계속해서 얘기하고 떠들고 수다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의 말'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여 표현하는 부분이 있다.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조금은 있을 것이고, 직접적인 비판을 피해가는 것은 아마도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고, 남은 기간 동안 더 잘해주기를 바라면서 평가를 유보한 까닭일 것이다.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특히 더 할 말이 있어보이나, 여기서는 더 나아가지 않았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정권 비판이 아니다. 변화에 대한 열망과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냐는 제안이다.

'출근이 덜 괴로운 직장'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저자의 말' 중에서

직장 내 조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약자의 조건이 나아지면 결국 차상위의 조건도 나아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성의 조건이 나아지면 남성의 조건이 불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던 사람들의 조건도 어느 정도 개선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출근이 덜 괴로운 직장이 되려면 자주 부딪히는 조직 실무라인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큰 권력은 무섭지만, 작은 권력은 끈적끈적하다.

2장 팀장 민주주의 중 팀장님 나빠요 82쪽 참조

일상적으로 접하는 갑질이 있다. 회장님이나 사장님은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대면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TV에서 접하는 것만이 갑질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니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일들이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일들로 변화를 하는 것이다. 변화에 뒤쳐지면 단지 불편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곧 직장에 나가지 못하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읽다보니 정말로 신선한 분석이 눈에 띈다.

그런데 진짜 산업 차원의 변화는, 룸살롱 가지 않는 감독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젠더민주주의 중 김영란 법과 주 52시간 근무, 여성들의 경제 시대 110쪽

중요한 감독들이 룸살롱에 가는 걸 싫어하고, 술 마시는 걸 싫어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영화 산업에서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단다. 룸살롱에서 영업하는 관행이 줄어들면서 여성들이 움직일 공간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산업에서 우연히 룸살롱 비지니스가 퇴조한 것과 유사한 흐름이 사회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접대를 제한하는 김영란법이란다.

사회적인 변화는 우연한 것에서 출발하고 제도에 의해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예전 법학개론 수업을 들을 때,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무엇인가? 라는 주제가 있었다.

교과서적인 답변은 "깨어 있는 시민의 양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추상적이라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공허한 답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결국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선후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듯 하다.

결국 제도란 사회적인 합의의 산물이고, 제도가 만들어지면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문제.

기업(민간)에서의 복지 문제.

저자가 직장생활하면서 보았던 낙하산에 대한 경험. 갑질 문제.

취업때 발생하는 비리를 막는 법에 대한 간단한 해결방법 - 면접볼 때 감사실 직원을 대동하면 해결된다고 하니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나는 늘 작아진다. 가끔은 불의와 타협하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적폐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고 말을 하면서 살자. 그래야 언젠가는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고, 어렵지 않은 용어와 설명을 사용하려는 저자의 의도에 맞게 쉽게 읽힌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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