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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 지음, 김다은 옮김 / 눌와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존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여성 건축가는 어디에 있을까?
혹은 어디로 갔을까(사라졌을까)?
수많은 TV 프로그램과 영화, 소설에서 여성 의사나 변호사 혹은 검사 같은 강인한 여성들로 묘사되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진 히로인이 등장하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영화나 소설이 아닌 뉴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니 그간 이름 있는 건축상 수상자를 찾아보아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인 듯 하다.
역사란 단지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를 저술하는 사람의 의도가 반영된 과거의 기록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여성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클레오 파트라 혹은 대처 정도일까? 그마저도 남성성이 강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름 난 여성건축가를 떠올리기 어려운 것은 일응 당연한 것 같다.
굳이 건축가가 아니더라도 근대 이전의 역사속 인물들 중 여성은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배우자로서의 역할이 부각되었으므로 대외적인 활동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주체적인 인물보다는 주변인물로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유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업군에서 여성의 역할과 기록에서의 부재가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건축가 바비"가 끼친 영향과 "위키피디아" 편집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부분이었다.
1. 직업으로서 가능하다는 인식의 확장과 영역 확장 - 건축가 바비, 연대의 확장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적어낼 때 '건축가'라고 적은 친구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특히나 여자인 친구들의 경우는 "현모양처"가 장래희망인 경우도 있었으므로 더더욱 찾기가 힘든 직업군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창의적인 능력과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기질을 고려했을 때, 여성에게는 동시대 여성들이 경악할 정도의 "엄청난 열의"로 질병을 공부하고 해부 실습을 하는 의료계보다 건축계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에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고 언론에 노출되는 여성건축가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기조차 어려웠을 것 같다.
"건축가 바비"의 역할은 건축가라는 직업이 "나도 될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하게 만든 점이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대기업 임원이나 정치인 등)를 살펴보면, 조직생활을 함에 있어 남자 보다 더 남성성을 강조하고 가정에서 어머니나 배우자로서의 역할에 시간을 덜 할애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보니 홀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여성인 후배나 후임을 끌어줄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결국 특출된 1인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여성 건축가들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종합적인 사실임을 인정한다.
다만 그 원인은 기존 남성적 시각에서 설명한 원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남성의 시각에서 보기에(마르셀 브로이어라는 남성건축가의 인터뷰 中 인용. 본인이 운영하는 사무실에 여성건축가들을 고용하였고, "아주 훌륭한 제도공"이라 인정하면서도 여성이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한계지었다) '성장하지 목한 근본적인 문제는 남편과 아이들, 가정'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생물학적 차이에 있어요.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다른 일은 할 수 없죠. 해방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29쪽
-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건축가의 한계 지움 : 인터뷰 당사자는 스스로가 하는 말들이 모순됨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여성이 건축업을 떠나게 되는 핵심 원인"은 "업계 전반에 깊게 남아 있는 기회와 처우에서의 성 불평등과 남성 중심적 업계 문화"이다. 그 원인은 어떤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다양하고 반복적이며 복합적인 일련의 상황이다- 45쪽 말미에서 46쪽 세번째 줄까지
저자는 여성 개인사정이 아니라 외부에 있고,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만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여성인 직장인에게 강요되는 역할은 가정에 충실하고 사회생활도 똑부러지게 하는 원더우먼이다. 결국 제 풀에 나가떨어지고 만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업계 내 여성들과 연대하고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것이다.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임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2. 기록 - 위키피디아 편집자로서 참여
또 한가지 방법은 여성 건축가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기 홍보가 여성으로서 매력적인 자질이 아니라고 배워온 여성들은 소리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크게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기록에서 배제되어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또한 단체구성원 중 1인인 경우 대표격인 한사람의 이름이 강조됨으로써 보조격인 여성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까닭도 있었다.
"위키피디아가 진정한 '인간 지식의 총체'로 유지되려면 편집에 참여하는 이용자가 실제 인구만큼 다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모두가 함께 해야 하죠. 이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117쪽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여성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해 누구나 꿈꿀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포스터가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