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할 수 있는 직업.
어느 투수는 1이닝을 책임질 수 없을 때. 그만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본인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다.
정신만이 아니라 그에 부합하는 신체적인 능력, 외형이 뒷받침되어야 유지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분야에 대한 자긍심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정해진 답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시점에서 내려와야 하는지 숱하게 했을 고민.

'남아 있는 나날'이란 책은 노벨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다. 우연하게도 노벨상 수상 이전에 종이책을 샀더랬다.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던 그 책은 고향 집의 책장에 얌전히 모셔져 있고, 그 책을 처음 완독한 사람은 아버지일 것이다(아들이 아버지의 은퇴시점을 바라보는 내용이 등장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번에 독서모임에서 첫번째 함께 읽는 책으로 선정되었다.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는데 한 인물과 그 사람을 둘러싼 지인들과 환경으로 채워진 긴 세월을 읽어나간다는 것. 그 자체로 책의 남은 분량이 나에게 있어 '남아 있는 나날'이 되었다.

전자책의 무수히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긴호흡이 필요한 책은 역시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어야 맛인데 그러지 못해서인지 참 오래도록 읽었다. 그럼에도 긴호흡으로 한번에 읽지 못하고 다시 앞을 읽었다가 다시 돌아나가는 일을 반복했다. 역시 '상'을 받은 책들과 나는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친하지 않은 종류의 책이라도 일단 완독하게 되면, 그 끝엔 무언가 '성취감'이 생기기에 포기만은 하지말자는 심정으로 읽었다.

특이한 직업이 등장한다. 여타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변인물로 그려지는 '집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인상이랄까? 과묵. 능력. 무표정. 엄격함. 통제. 상황파악.
주인공(스티븐스)의 입을 빌려 말하면 '품위' (저는 '소명의식이 외부로 발현된 이상적인 형태'로 표현하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집사들 대다수가 스스로 그런 역량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러나 나는 우리가 말하는 '품위'란 것은 이 업에 몸담고 있는 한 끊임없이 의미 있게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본인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업에 충실하고자 한눈 팔지 않고 살아온 결과 본인의 사적인 감정을 숨기고, 아들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인연을 놓치고 맙니다.

책의 도입부가 영국인 주인이 아닌 미국인 주인으로 바뀐 후, 북적이던 식솔들이 줄어 4인체제로 남고 본인이 언젠가 본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에서 실수가 발생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한번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휴가를 받아 오래 전 연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인연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된 것은 여정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주인공의 남은 날은 어떤 날들일까요?
휴가를 받았음에도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한때 연인이 되었을 여인의 편지 어느 문구에 묻은 감정을 쫒아 떠난 여행을 통해서 주인공은 살아갈 힘을 얻었을까요?

중간에 나오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일화와 육체의 노쇠화에 따른 실수. 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이 반복될 것인지.

한사람의 세월을 다루고,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이후 모시는 주인의 교체와 지위 변화를 통해 남은 날을 떠올리게 하기 보다 살아온 날을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반추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5년 후, 10년 후에 읽었을 때. 느낄 감정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책. '남아 있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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