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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잠든 물고기 ㅣ 나남문학번역선 20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인옥.김경림 옮김 / 나남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리뷰
아이를 가진 여성들 사이에 이토록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것 같다.
역시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 것과 당사자로서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다를지도...
책을 읽기 전 1999년도에 일어났던 일명 '수험살인'이라는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라기에 아이의 죽음으로 끝이나겠구나 추측하면서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에서 죽은 아이는 없으니까 안심하고 읽으셔도 될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5명의 근황이 전부 등장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을테니 이 글을 일게 되는 독자분들에게 미리 알려드린다. 이 점에서 옮긴이의 글을 책의 전반에 배치한 것은 영리한 편집인 듯 하다. 옮긴이의 글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설명을 알면서 엄마들의 감정에 몰입하다 보면 비극이 일어날 것만 같아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질 못한다. 덕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이 이토록 무서울 줄 몰랐다.
엄마 5인이 각자를 알기 전의 모습, 서로 알게 된 계기, 사이좋은 한 때, 자녀의 진학에 대한 엄마들의 인터뷰를 기점으로 해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그들의 사이, 이후 서로를 밀어내게 되는 과정, 실제 있었을지 알 수 없는 한 엄마의 파국을 그린 장면, 결국 아이의 입학을 앞둔 시점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 5명의 엄마.
사소한 말 한마디.
말을 한 사람은 후회를, 듣는 사람은 오해를 한다.
즉시 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둘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일일이 말을 하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오해의 크기가 커질수록 친밀감의 간격이 멀어진다.
교육에 대한 입장차도 아이들에 대한 암묵적인 서열 혹은 평가가 매겨지면서 정보공유에서 각자도생이 된다.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었던 관계가 마이너스가 된다. 호의에 대한 과도한 의존, 각자의 영역에 대한 무심한 침입으로 후회스러운 관계가 되는 과정을 작가는 첨탑을 쌓아가듯 정성스럽게 쌓아올린다.
그렇게 쌓아올린 첨탑이 무너지기 직전. 모티브로 했던 사건이 실제로 소설에서도 펼쳐질 듯 한 그때. 작가의 영리함이 드러난다. 5명의 엄마 중 누구인지, 아이는 누구인지에 대해 정확한 묘사를 하지 않고 피해간다(아이에 대한 설명으로 위험한 일을 저지를 엄마가 누구인지 대략적인 추측은 할 수 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느낌도 난다(실제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만큼 엄마들을 궁지로 몰아간다. 모임은 해체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엄마들이 마지막에 본인들의 삶을 추스릴 수 있었던 것은 이토록 단순한 사실덕이다.
반복되겠지만. 내 삶이 망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세상은 그대로이고 내 삶은 끝이 나기 전까지 계속 된다. 아이가 국립 또는 사립에 들어가지 못해도.
자기 아이에 대해 항상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지만 다른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늘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어떤 부모라도 같지 않을까. 교육에 대한 문제는 그래서 어렵다. 같은 공간에 있는 아이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2. 인상깊은 구절
요코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거나 숨긴다거나 그런 식으로 금방 생각하는 사람, 나는 치카에게 그런 식으로 보였던 것일까. 치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요코는 순간 불안해졌다.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싫어했던 건 아닐까. 너무 캐묻는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안절부절 못했다. 그게 아니라, 치카에 대한 것을 전부 알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이야기 흐름상 물었을 뿐이라고 치카에게 설명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226쪽
치카
명품백, 그러고 보니, 요코 씨였는지 히토미 씨였는지, 언젠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니, 다치바나 유리가 했나. 자녀를 유명학교에 보내는 부모는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기분일 거라고. 하지만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지? 살 수 있는 여유가 돼서 샀다면 들고 다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남에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갖고 싶었던 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287쪽
마유코
왜 내가 이런 곳에 이사하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왜 내가 그 좁은 아파트에 만족하지 못했을까. 왜 내가 도심에 살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걸 했을까. 왜 내가-내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싶었던 걸까. 뭐가 갖고 싶은 걸까. 조용한 의문이, 소리도 없이 내리는 눈처럼 마유코의 가슴에 퍼져 갔다. 363쪽
가오리
작은 실패 따위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거야말로 내가 에리카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나야말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448쪽
히토미
그런데 왜, 지금도 굶주린 듯 뭔가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히토미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불만으로 생각하는지, 무엇을 참지 못하는지, 자신 안에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패배감이 있는 것인지, 히토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4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