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수사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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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에 로맨스까지 고루 갖춘 작품이라 드라마로 만들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김선우와 한재은의 시점이 교차되어 나오며 중간중간 두 사람의 과거도 보여준다. 사실 이런 소재를 다루는 작품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의 입장에서 전개될 때가 많은데 이 소설은 김선우의 시점이 먼저여서 신선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과 과거에 얽힌 두 사람의 서사가 인상 깊었다. 내가 좋아하는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나의 감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결코 유쾌하진 않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숨기고 싶은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켜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고개가 옆으로 왔다갔다하는 일이라 소설 속 선우와 재은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달빛 수사>라는 제목은 선우가 근무하는 회사의 간판 게임 이름과 같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코메트리라는 소재가 주는 신비함, 게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경쾌함, 달빛이라는 표현이 주는 낭만. 달빛이 깜깜한 밤하늘을 비취주듯이 다소 서늘할 수 있는 장르 속에서도 따뜻함을 엿볼 수 있었기에.
추운 겨울, 이불 속에서 코코아를 마시며 읽기 좋은 글이다. 색다른 방식의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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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이름의 숲
아밀 지음 / 허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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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상현실이 현실보다 더 익숙한 세상.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채와 남들과 다르단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숲의 이야기.

소설의 배경이 매우 신선했다. 결국 찾아와버린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서울은 더 이상 대도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가난한 취급을 받고 부잣집 아이들은 변두리에 살며 가상현실 속 학교에 다닌다. 지금 시간대의 현실과 역전된 점이 신기해서 초반에 확 몰입이 됐다. 주로 대체식을 먹고 진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 매우 귀하게 여겨지는 세계라니. 이대로 환경오염이 계속된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씁쓸하기도 했다.

책의 주인공은 두 명, 이채와 숲이다. 이채는 가난한 서울 출신이지만 아이돌이 되어 많은 인기와 부를 얻는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주가 된 세상에서도 아이돌은 어제보다 오늘 더 예뻐야 하는 건 똑같나보다. 진짜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이채에게도 음식이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살이 찌지 않도록 매일 차오르는 식욕을 억누르며 최소한의 영양분만 섭취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아주 많지만 이채는 마음 한 구석이 병든 인물로 느껴졌다.

그와 대비되는 인물이 이채가 새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만난 고등학생 숲이다. 숲은 가상현실 저항증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고 있지만 다온 무리에 무릎 굽히지 않으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인물이다. 숲은 이채의 팬이기도 하다. 가상현실 저항증이 있고 가상현실기기를 살 수도 없는 숲은 오로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이채를 만난다. 이채를 동경하여 이채를 만나러 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모습,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저 취미로 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이채가 숲에게 끌렸던 것도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면을 가진 정반대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큰 틀로 보면 두 주인공의 성장소설에 가깝지만 청소년보다는 성인들이 읽기에 적합할 것 같다. 이채의 뮤직비디오 촬영장면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아이돌에 열광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여 위로가 됐다. 누구나 저렇게 대가 없는 사랑을 했던 경험이 있을 테니까. 우연히 음악을 듣고, 음악이 너무 좋아서 영상을 찾아보고, 영상을 보다가 그 사람 자체가 좋아진 경험. 나의 경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그래도 더욱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책을 덮고 나니 그 시간들이 몽글몽글한 형태로 눈앞에 떠다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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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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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차가움, 파랑.

작품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들이다.
단편 중 얼어붙은 이야기, 채빙, 차가운 파수꾼이 인상 깊었다.

곽재식 작가님의 <얼어붙은 이야기> 는 굉장히 신선했다. 오로지 생사귀와 '나'의 대화로 스토리를 풀어내다가 받아들이기 싫은 일을 허구로 치부하며 마무리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게 다 무슨 짓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소설의 첫 문장과 생사귀가 뱉은 문장이 조금 다르다. 이마저도 작가의 의도라면 '나'가 겪은 일들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 되지만 결국 이 글은 진짜 현실에 사는 '나'가 읽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 소설 속 소설이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구병모 작가님의 <채빙> 은 샤머니즘을 초월적 존재의 시점에서 내려다본다. 꽁꽁 얼어붙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신이라 칭하며 믿고 의지하는 모습. 일상에서의 우리가 겹쳐 보였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거나 공들여 돌탑을 쌓으며 안녕을 기원하는 그런 흔한 광경. 굳이 해나 달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소설은 날카로운 얼음 조각 같았지만 덮고 나니 희망적인 감정이 솟았다.

연여름 작가님의 <차가운 파수꾼>은 정말 재밌었다. 각박한 환경에서도 피어나는 등장인물들 간의 우정. 노이, 이제트, 선샤인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는지 지켜보면서 포근함과 애틋함을 느꼈다.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결점을 지니고 있다. 노이에게는 시공간의 제약이 이제트에게는 신체적 제약이 있으며 선샤인에게도 제약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보다는 다른 이를 위하며 서로의 '파수꾼'이 된다. 소설의 제목인 <차가운 파수꾼>은 세 명의 인물 모두를 뜻하는 말이 아닐까?
온도가 높아져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 바쁘게 살길을 찾기 마련이다. 소설 속 주술사처럼 괴팍해지고 비열해지는 것이 어쩌면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리하지 못한 선택을 한 이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얼음의 차갑고 시리고 날이 선 이미지를 그대로 나타낸 단편들도 있고 너무 찬 것을 만지면 오히려 화상을 입는 것처럼 강렬하고 따뜻한 글도 있는 책이다.
다가오는 여름에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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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비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4
박문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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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쭉 생각해오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SF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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