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이름의 숲
아밀 지음 / 허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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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상현실이 현실보다 더 익숙한 세상.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채와 남들과 다르단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숲의 이야기.

소설의 배경이 매우 신선했다. 결국 찾아와버린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서울은 더 이상 대도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가난한 취급을 받고 부잣집 아이들은 변두리에 살며 가상현실 속 학교에 다닌다. 지금 시간대의 현실과 역전된 점이 신기해서 초반에 확 몰입이 됐다. 주로 대체식을 먹고 진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 매우 귀하게 여겨지는 세계라니. 이대로 환경오염이 계속된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씁쓸하기도 했다.

책의 주인공은 두 명, 이채와 숲이다. 이채는 가난한 서울 출신이지만 아이돌이 되어 많은 인기와 부를 얻는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주가 된 세상에서도 아이돌은 어제보다 오늘 더 예뻐야 하는 건 똑같나보다. 진짜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이채에게도 음식이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살이 찌지 않도록 매일 차오르는 식욕을 억누르며 최소한의 영양분만 섭취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아주 많지만 이채는 마음 한 구석이 병든 인물로 느껴졌다.

그와 대비되는 인물이 이채가 새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만난 고등학생 숲이다. 숲은 가상현실 저항증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고 있지만 다온 무리에 무릎 굽히지 않으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인물이다. 숲은 이채의 팬이기도 하다. 가상현실 저항증이 있고 가상현실기기를 살 수도 없는 숲은 오로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이채를 만난다. 이채를 동경하여 이채를 만나러 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모습,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저 취미로 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이채가 숲에게 끌렸던 것도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면을 가진 정반대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큰 틀로 보면 두 주인공의 성장소설에 가깝지만 청소년보다는 성인들이 읽기에 적합할 것 같다. 이채의 뮤직비디오 촬영장면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아이돌에 열광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여 위로가 됐다. 누구나 저렇게 대가 없는 사랑을 했던 경험이 있을 테니까. 우연히 음악을 듣고, 음악이 너무 좋아서 영상을 찾아보고, 영상을 보다가 그 사람 자체가 좋아진 경험. 나의 경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그래도 더욱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책을 덮고 나니 그 시간들이 몽글몽글한 형태로 눈앞에 떠다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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