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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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음, 차가움, 파랑.

작품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들이다.
단편 중 얼어붙은 이야기, 채빙, 차가운 파수꾼이 인상 깊었다.

곽재식 작가님의 <얼어붙은 이야기> 는 굉장히 신선했다. 오로지 생사귀와 '나'의 대화로 스토리를 풀어내다가 받아들이기 싫은 일을 허구로 치부하며 마무리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게 다 무슨 짓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소설의 첫 문장과 생사귀가 뱉은 문장이 조금 다르다. 이마저도 작가의 의도라면 '나'가 겪은 일들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 되지만 결국 이 글은 진짜 현실에 사는 '나'가 읽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 소설 속 소설이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구병모 작가님의 <채빙> 은 샤머니즘을 초월적 존재의 시점에서 내려다본다. 꽁꽁 얼어붙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신이라 칭하며 믿고 의지하는 모습. 일상에서의 우리가 겹쳐 보였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거나 공들여 돌탑을 쌓으며 안녕을 기원하는 그런 흔한 광경. 굳이 해나 달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소설은 날카로운 얼음 조각 같았지만 덮고 나니 희망적인 감정이 솟았다.

연여름 작가님의 <차가운 파수꾼>은 정말 재밌었다. 각박한 환경에서도 피어나는 등장인물들 간의 우정. 노이, 이제트, 선샤인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는지 지켜보면서 포근함과 애틋함을 느꼈다.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결점을 지니고 있다. 노이에게는 시공간의 제약이 이제트에게는 신체적 제약이 있으며 선샤인에게도 제약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보다는 다른 이를 위하며 서로의 '파수꾼'이 된다. 소설의 제목인 <차가운 파수꾼>은 세 명의 인물 모두를 뜻하는 말이 아닐까?
온도가 높아져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 바쁘게 살길을 찾기 마련이다. 소설 속 주술사처럼 괴팍해지고 비열해지는 것이 어쩌면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리하지 못한 선택을 한 이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얼음의 차갑고 시리고 날이 선 이미지를 그대로 나타낸 단편들도 있고 너무 찬 것을 만지면 오히려 화상을 입는 것처럼 강렬하고 따뜻한 글도 있는 책이다.
다가오는 여름에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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